취미를 습관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하기
유튜브가 인강이 되면 생기는 일
알고리즘 서핑에 의식을 맡기다 가끔 '이 생각은 잡아두고 싶다'는 생각에 펜과 노트를 들게 하는 영상들이 있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멈췄다가 반복 재생하면서 강연과 인터뷰의 논지와 흐름을 편집해가며 메모한다. 동기부여를 위한 롤 모델들의 인터뷰가, 저명한 건축가들의 통찰력이, 최근엔 머니투데이의 카드 뉴스 미디어 ‘티타임스 TV’ 영상들이 그렇다. 그중 클라우드 전문가로 알려진 최재홍 교수님의 DT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디지털 전환) 분석 영상에 빠져드는 진기한 경험을 했다.
듣기는 많이 들었던 DT는 그래서 뭘까. 기업 관점에서는 디지털 신기술을 선제적으로 도입하여 강력하고 지속적인 변화와 이윤을 창출하는 것, 고객 입장에서는 그 변화가 수용되어 습관이 되고 생활이 되어 문화가 되는 것, 더 나아가 국가와 인류 차원에서는 새로운 서비스와 비즈니스로 사회구조가 혁신되는 4차 산업혁명을 의미한다고 한다. 더 이상 카페가 아닌 인공지능과 데이터 회사라는 스타벅스를 비롯, 카카오, 네이버, 쿠팡 등 소위 잘 나가는 기업들은 이미 10여 년 전 DT의 씨앗을 뿌렸고 지금 그 열매를 거두는 중이다. 카카오 택시로 출근하면서 사이렌 오더로 커피를 주문하고 화상회의를 마친 뒤에 배민으로 점심을 먹고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려 쿠팡에서 주문한 상품을 받아가는 보통의 하루. 교수님의 말씀을 종합해보니 결국 DT란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생활이 된 그것'이었다.
스세권을 만들고 전 세계 커피의 맛과 품질을 통일시킨 스타벅스가 어쩌면 금융과 도시 공간 설계까지 진출할 수 있겠다는 교수님의 통찰력에 감탄하다 마지막 한 마디에 정신을 번쩍 들었다. "회사들 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DT 해야 해요."
내가 할 수 있는 DT, 초차원으로의 발버둥
자신을 DT 하라는 조언을 고민했다. 'C언어'라는 말만 들어본 코딩이라도 공부해야 하나 싶었는데 그다음 영상이 바로 '문과도 코딩을 배워야 하나?'였다. 단순한 엔지니어의 도구가 아닌, 일에 대한 처리의 흐름을 알기 위한 코딩이라면 전 국민이 배워도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개인도 철기시대의 석공으로 도태되지 않도록 새로운 산업에 자신을 적용하고 계속 배워나가는 자세를 함양하는 것이라고 했다.
일련의 영상들을 보고 나니 솔직히 이제 내가 속한 산업은 끝났다, 디지털 부서는 있지만 그에 대한 거버넌스는 부재한 것 같다는 불안과 절망이 꽤 강렬하게 솟구쳤다. 그런데 나부터도 기업과 사회가 제공하는 혁신의 수용자였을 뿐, 세상의 기술적 변화에 둔감했다는 자기반성이 곧 찾아왔다. 지금 당장의 내가 할 수 있는 생활의 변화, 혁신을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강의에서 유현준 교수님이 미치오 카쿠의 책 '초공간'을 인용하며 설명한 '차원으로서의 공간'이 떠올랐다.
공간이란 실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 사고의 무대로 가로, 세로, 높이로 이뤄진
3차원 세계이며 선의 1차원과 평면의 2차원을 넘어선 그다음 세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기억하고 싶은 말들을 만날 때 그것이 휘발되지 않도록, 섞이지 않도록 테마가 다른 노트 대여섯 권을 오가며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배민 마케터였던 문구인 김규림 님의 추천템 스마트 앱 프린터로 캡처해둔 이미지들을 붙이고, 만년필에 잉크를 묻혀 적어가던 내 안 가득한 아날로그성에 취하던 순간들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나를 스쳐가는 1차원의 생각을 활자로 붙드는 2차원의 생명 연장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 메모들은 아직 단편적인 조각들로, 결국 내 노트는 무엇 하나 끝맺음이 없는 미완성의 인큐베이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한 달 전부터 이 아이디어 노트를 뒤적여가며 비로소 브런치에 '글'을 올려보고 있다. 산재해있던 기억들을 고르고 직조하는 편집의 정성을 들여 마침내 생각이 머물 수 있는 '집'으로서의 글을 담고 열린 독자를 연결하며 데이터를 제공하는 브런치는 내게 3차원 세계가 되었다. 그동안 내 안에 없던 디지털 습관을 만들어가는 DT의 장, 이곳에 오기까지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불완전해질 수 있는 용기
내겐 '솔직'이 금기가 되던 시절이 있었다. 중학생 무렵 내 감정과 생각에 충실했던 작문이 너무 큰 충격이었다는 국어 선생님의 공개적인 피드백은 내게도 못지않은 충격을 주었다. '솔직히' 라며 내게 조언을 해주려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싸이월드부터 인스타그램까지 의식적인 노력을 들여보아도 도무지 SNS는 내가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지 않았다. 문장을 만드는 재간은 있어도 무언가 큰 구멍이 생겨 진짜 내 글은 쓸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요즘 대학생들이 스터디그룹까지 만들며 준비한다는 브런치 작가도 결국 또 하나의 스펙 전쟁이 아닌가 하는 냉소를 품고 바라보던 시절도 있었다. 크리에이터 아닌 자 유죄 같은 집단적인 사회 분위기에 등 떠밀리기 싫던 반항심 가득한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일단 나만 바라보기로 했다. 지난 10년간의 실험 결과, 나는 언젠가 분명히 탈조직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날을 위해 노트보다 확실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했다. 어쩌면 광고라는 당장의 수익도 없이 무료 콘텐츠를 확보하며 이용자의 자발적 열심을 독려하는 이 생태계의 고차원적 설계에 이미 농락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나 대로 스스로를 DT 하면서 순진하게 이 플랫폼에 입주해보려 한다.
최근 내 롤모델 어벤저스에 새로 합류한 이가 있다. 넷플릭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Next in Fashion'의 초대 우승자가 된 패션 디자이너 김민주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말했다. '불안하다면 먼저 손을 움직여라. 결과물을 끄집어내려는 습관이 필요하다'라고. 오랫동안 소심하게 망설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듯한 내게 뜨끔했던 조언이었다. 생각의 1차원에 길들여지지 말자. 2차원의 손을 움직이고 눈을 크게 뜨고 3차원으로 이동해야 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불완전할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