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로스에 관하여
2주 전, 사랑하는 가족과 마찬가지였던 슬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사랑하던 존재를 갑자기 잃으니 정말 허망했고, 슬프고,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왜 이렇게 해주지 못했을까, 저렇게 해주지 못했을까 해주지 못했던 것들만 생각이 났다. 정확하게 아이의 건강상태를 인지하지 못하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들이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펫로스일 때 중요한 건 충분한 애도의 기간을 가지는 것이다. 정말 많이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고마워하고 후회하고..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여러 감정을 가족과 함께 표현하고 나누고 나니 슬이를 비로소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는 것 같았다. 30일 안에 해야 하는 사망신고 절차도 오늘에서야 밟을 수 있었다.
펫로스에 대한 글을 찾을 때마다 가장 중요한 건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확하게 짚고 평가할 부분은 직면하기로 했다. 그리고 평가해야 할 부분을 가족과 나누었고, 다음 두 가지에 대한 결단이 없다면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기로 했다.
1. 내 적금을 깨서까지 반려동물의 치료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가?
반려동물이 몸이 안 좋을 경우 병원비는 어마 무시하게 나온다. 슬이가 전에 빈혈, 신장 쪽이 안 좋아 입원했을 때 이틀 만에 200만 원 나온 적도 있던 것 같다. 동물보험이 잘 구축되지 않은 제도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에 이 질문을 반드시 던져봐야 한다.
2. 반려동물을 위해서 시간, 에너지를 사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반려동물이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된 시대다. 심지어 자식 같은 느낌의 반려견을 위해서는 내 시간과 에너지를 언제든지 사용할 준비 또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이런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어도 사람은 실수한다. 사람 아기에 대해 케어하는 만큼 반려동물을 케어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수만 번 해보고 YES라는 답변이 나올 때서야 키우는 게 맞는 것 같다.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서는 이 정도 책임감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와 가족은 슬이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감정을 느끼고 새로운 생각과 행동들을 할 수 있었다. 케어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에도 그저 한결같이 가족만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슬이의 마음을 언제 또 느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반려동물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건 정말 맞다. 슬이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아 꿈만 같다. 그 꿈에서 깨어난 후 내 세상은 틀림없이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