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건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목에 파는 과일들이 가격이 싸다. 병원 다니는 건 사람을 살짝 무력하게 만드는 데가 있는데, 이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 고심하다가 딱딱한 복숭아 한 봉지를 사서 작업실에 왔다. 무덥고, 깁스한 발은 무겁다. 단맛은 옅지만 아삭아삭한 복숭아가 땡긴다. '언니 복숭아 사 왔으니 먹어.' 내 말을 들은 윤이가 봉지를 흔든다. '나도 사왔는데 복숭아.'
냉장고에 복숭아도 오이도 넘치는 여름이다. 윤이가 사다둔 오이도 있고, 차차가 맛있어서 집에서 몇박스째 주문해 먹었다는 오이도 있다.
가정집이었던 곳으로 작업실을 이사하면서 우리는 웬만한 것들을 작업실에서 해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맞춰서 들인 냉장고는 적당했던 크기와 가격만큼이나 성능도 딱 그만큼이어서, 싱싱한 것들에 금방 얼음 조각이 들러붙곤한다.
'무른 건 요거트에 넣어 먹으면 돼.'
복숭아와 오이가 놓여있다. 이 공기 속에 서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