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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Jul 19. 2024

연중 제16주일 (농민 주일)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주 말씀을 읽어 내려가는데,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는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리고, 잠시 무엇이 그 구절에 저를 머무르게 했는지 묵상해 봅니다. 한참을 묵상하고 나서야 목자와 양이라는 두 단어가 요즘 제 고민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임원이 되어 추가적인 교육을 받고 과정의 마무리로 그룹 부회장님과 면담을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사업을 맡으면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준비해서 발표하고, 그에 대한 의견이나 질문 등을 받는 형식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길어야 10초 정도 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하고 있었을 때, 부회장님께서 대뜸 롤모델이 없구만이라고 하셨습니다. 급하게 어느 한 분의 이름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끝내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구차한 변명으로 여러 임원들의 장점만 모아 놓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임원으로 어려운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같이 자리하신 다른 임원께서 제게 이제는 당신이 리더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변에 전적으로 따를 사람은 찾지 못하고, 상사와 후배들 사이에서 어려움만 나열하고 있었던 제 뒤통수를 때리는 말씀이셨습니다. 저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제가 리더가 되려고 하지 않고, 누군가 앞에서 책임지고 끌고 갈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야기인데, 아직 제 가슴속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럼 사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그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지 않을까 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 지에 대한 많은 의견이 나와도 그럼 그렇게 합시다라고 결정을 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배는 제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여러 명이 의견을 모아서 결정한다고 가정을 해도 쉽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의견을 만들기 위한 논쟁은 끝이 없습니다. 누군가 논쟁은 여기까지 하고, 그렇게 합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논쟁이 마무리됩니다. 다수결로 결정하려고 해도, 누군가의 다수결로 하자는 제안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책임질게라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이 목자이고, 리더인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하던 일을 멈추고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는 꼭 필요합니다. 고요한 바다에서는 선장이 없어도 항해는 계속되지만, 폭풍이 몰려오면 선장이 없이는 뚫고 갈 수가 없습니다. 물론 결정을 따르고 앞으로 함께 나아갈 양들도 꼭 필요합니다.


항상 잘 다녔던 것은 아니었지만, 나름 잘 다니던 회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로 돌아가봅니다. 그때는 제가 목자인지 양인지 스스로 답을 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목자처럼 행동을 하면 왜 양이 맘대로 하냐고 하고, 양처럼 기다리고 있으면 왜 목자가 되지 못하냐는 말을 들었습니다. 때로는 양이 되었으나 목자의 말을 따르지 못했고, 목자로 행동하였으나 양들이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목자가 되기에는 확신이 부족하고, 양이 되기에는 생각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금은 잠시 회사 밖에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면서 목자와 양 중에서 어느 쪽에 속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아직도 답을 얻지 못했지만, 목자가 되기 위한 신념과 애정 그리고 양이 되기 위한 믿음과 단순함을 먼저 채우고 있습니다.


목자가 없는 양들처럼 보인 사람들은 어쩌면 목자가 있어도 따르지 못했던 사람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알려주어도 믿고 따르지 않고, 의심하고 눈치를 보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목자가 없으면 누군가 나서서 목자가 될 수도 있지만, 아무도 나서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언제나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목자가 없는 양들을 보시면 가엾은 마음이 들어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십니다. 그 가르침을 믿고 따르느냐는 제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미 제 그릇을 가득 채우고 있는 완고함을 내려놓아야 예수님의 가르침을 담을 자리를 생긴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제 것을 버리지 못하는 저를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 마르코 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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