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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맘가는대로 Jul 26. 2024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밥 먹었니?”

“밥은 먹고 다니니?”

“밥 한번 같이 하자.”

“내가 밥 한번 살게.”


여기저기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입니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식사는 단순히 끼니를 때우고, 배를 채우는 것보다 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전쟁을 치르면서 먹고살기가 어려웠던 기억에서 출발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함께 밥을 먹는다는 것이 주는 친밀감과도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식사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사적인 공간과 시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은 회식이 업무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보다는 개인의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는 시간으로 시선이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또 가끔은 공적인 식사 모임도 식사가 진행되면서 사적인 공간과 시간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밥이 가지는 힘이 큰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식사를 함께 하면서 친밀감을 높이기도 하고, 어려운 문제가 잘 안 풀리면 밥을 같이 하면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도 합니다. 어색한 사이였는데 몇 번의 식사를 함께 하면 어느 순간 한결 가까운 사이게 되어있을 때도 많습니다. 딱딱한 강연이나 회의시간에는 나누기 어려웠던 생각들이 식사 시간에는 쉽게 꺼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공식적인 행가가 아니라면 대부분은 가장 편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불편한 사람과 함께 먹느니 혼자 밥을 먹거나 심지어 굶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저에게도 식사는 참 중요한 시간입니다. 가끔은 혼자 식사를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합니다만, 보통은 다양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면서 생각을 나누며 서로를 조금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면 나중에 업무로 만나게 되었을 때 왠지 더 편안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누군가에 식사를 대접하거나 대접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감사를 전하기 위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반대로 부탁을 하기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축하나 위로를 하기 위해 식사를 함께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식사를 함께 하면 식구가 됩니다.


예수님도 많은 사람들과 식사를 함께 하셨습니다. 첫 번째 기적도 잔치 중에 보여주셨습니다. 소외받고 힘없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시며, 그들도 우리와 같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죽음을 앞둔 저녁에도 제자들과 식사를 함께 하시며, 성찬의 전례를 세우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오늘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해주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요한 6,5


장정만 오천명이 넘는 군중들을 모두 한식구로 만드십니다. 함께 식사를 한 군중들은 예수님이 한결 더 가까워짐을 느꼈습니다. 억지로 왕으로 세우려는 것은 조금 도가 지나쳤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멀리서 소리도 다가왔던 예언자가 아니라 옆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친구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표현하는 많은 말들이 있겠지만, 우리와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시는 한 식구만큼 친근한 표현도 찾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구원자로 우리에게 오신 하느님의 외아드님이 지금은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식구가 되셨습니다. 왜 굳이 군중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을까 생각해 보면, 생명의 빵이 되실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겠지만, 저는 그냥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한 식구가 되어주시기 위한 것이었다고 오늘은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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