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사준 인형과의 이별
엄마가 우리를 두고 떠난 날 이후로 나와 동생에겐 인형 두 개가 남았다. 그 시기 유행하던 강아지 고양이 인형이었는데, 전화번호도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인형을 하나씩 쥐어주면서 엄마가 없는 동안 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마냥 신났다. 갖고 싶었던 귀여운 동물인형을 품에 안고 좋은 기분으로 차에 올라타 시골로 향했다. 익숙한 우리 할머니 집. 그 앞에 우리를 두고 떠나던 엄마의 모습. 버려졌다 생각하면서도 엄마가 마지막으로 사준 인형만은 항상 데리고 다니며 애지중지했다.
어느 날엔가 아빠 핸드폰으로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는 화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 그 전화를 내게 건네주며 종이에 할 말을 써주었는데, 아빠의 압력에 못 이겨 엄마를 무너지게 하는 말을 뱉었다.
"난 이제 엄마 필요 없어. 엄마가 우리 버리고 갔잖아. 보기 싫어."
핸드폰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화가 끝나고 아빠는 깔깔거리며 엄마에게 한 방 먹인 기분이라며 통쾌해했다. 동생은 너무 어려서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지 못했고, 그저 나만 혼란스러웠다. 내가 뱉은 말 때문에 정말 엄마가 우리를 찾으러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우리는 평생 아빠랑 살아야 하나? 나가라면 나가고 오라면 오고 말 잘 듣는 개처럼 지내야 하는 건가? 수많은 물음표가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엄마가 준 인형마저 사라졌다. 그 당시 인형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할머니가 정리하셨던 거 같은데 엄마의 마지막 선물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내가 엄마에게 나쁜 말들을 했기 때문에 일어난 불행이라고 생각했다. 마음에 있지도 않은 뾰족한 말들을 엄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엄마가 그 말을 듣고도 나와 동생을 떠올리며 언젠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살아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하리라 믿지 않았던 엄마였다.
다시 인형 이야기로 돌아와서, 아무튼 나는 인형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밤마다 눈물을 찔끔 흘렸다. 이제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게 없다 생각해서 더 서러웠다. 이별이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그 인형이 나와 엄마를 연결하던 선이었다 믿게 되면서 내겐 너무나도 큰 이별로 다가왔다. 버려졌다 생각하면서도 내심 엄마가 다시 우리를 찾으러 올 것이라 믿었다.
인형과의 이별. 엄마와의 추억마저 같이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