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 제일 나쁜 것은 삶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을까?

by 시sy

미국 드라마 <닥터 오디세이>에서 맥스가 이렇게 말한다.


"건강에 제일 나쁜 것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지 않으면 아플 일이 없고 병 걸릴 일도 없다. 이 말은 태어나지 않았다면 겪지 않을 모든 고통과 절망을 겪게 되었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고 하나마나 한 말 같지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기쁨은 결코 혼자 오지 않는다. 격한 기쁨은 격한 고통을 수반한다.


영화든 현실이든 많이 쓰는 표현 중 하나가 '좋은 뉴스와 나쁜 뉴스가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들을래?'이다. 이 표현이 항상 적용될 수 있는 이유는 인생사 모두 그렇기 때문이다. 대학에 합격하면 대학이 주는 여러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 비싼 등록금, 빡빡한 강의 일정과 과제, 시험... 취업도 그렇고 결혼과 출산도 예외가 아니다.


만약 기쁨 뒤의 고통이 싫으니 애초에 아무것도 안 하고 살겠다고 다짐한다면 어떨까?

요새 흔히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위로의 말이다. 항상 뭔가를 하며 바쁜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은 뭔가를 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결과가 기쁨은 적고 고통은 턱없이 많다면 어떨까?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삶의 멈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죽지 않는 한 그건 불가능하다. 따라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 즉 무위(無爲)란 인생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일 것이다. 굳이 노력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단순히 관조하며 지나가는 일들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 같은 태도는 불교나 스토아학파의 수행 방법과 일치한다.


그러나,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모아 놓은 돈이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현대인들은 숨만 쉬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다. 꽤 많은 복지제도가 있는 것 같지만 오늘부터 아무 일도 안 할 테니 돈 좀 주시오, 한다고 선뜻 도와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저축이 있든, 도와줄 가족이 있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자. 그럼 뭘 하지?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해 놓고 뭘 할까 고민한다는 게 모순 같지만 이건 넘어가자. 사실 안 한다는 게 애써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치킨도 안 먹고 넷플릭스도 안 보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보통 드라마를 보면 자기를 괴롭히던 상사의 얼굴에 사표 봉투를 모서리로 던지고 저금을 털어 시골로 떠난다. 값싼 방을 얻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시골 도서관을 발견한다. 도서관 사서가 의외로 잘 생겼고 친절하며 잘 맞아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 그렇게 해피엔딩? 절대 아니다. 인간관계가 주는 기쁨 뒤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라온다. 그 괴로움을 잘 극복하면 다시 행복 시작, 행복이 끝나면 또 고통 시작, 이후 죽을 때까지 무한반복이다.


세상에 대한 경험, 내가 느끼는 감정, 그리고 관계는 삶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인간으로 존재하는 근거가 된다. 이 모든 것을 외면하면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TV에 나오는 '자연인'으로 살아도 하루 먹을거리를 걱정하고 최소한의 집수리를 하며 누군가는 만난다. 아무 경험도 안 하고, 감정도 느끼지 않으며, 어떤 관계도 맺지 않고 살 수 없다.


그럼 뭘 어쩌란 말인가?

불교의 가르침은 삶의 경험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경험 속에서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집착과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놓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고통이 닥쳤을 때 생각을 곱씹어 부풀리지 말고 정확히 주는 고통만큼만 괴로워하라는. 아예 고통을 외면할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부정'을 제안했다. 여기서 '의지'란 생명체가 가진 끝없는 욕망의 충동이다. '의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결핍의 고통이 생기고, 충족되면 곧 지루함의 고통이 시작된다. 충족돼도 고통, 충족되지 않아도 고통, 그래서 삶이 고통의 순환이라는 불교의 세계관과 일치한다. 그래서 의지를 부정하자는 것인데 방법적으로 욕망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내면에서 자유로워지라고 했다.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점에서도 불교와 유사하다.


다행히 쇼펜하우어는 내면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첫째 예술, 쇼펜하우어는 음악을 통해 의지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예술은 현실의 고통을 초월하게 만드는 경험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둘째 연민,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다 보면 개인적인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데.. 그런가?

셋째 금욕적인 삶, 더 설명할 필요를 못 느낀다.


불교든 쇼펜하우어든 모두에게 통용되는 고통 회피 방법은 없다. 구원은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선 현자들에게 힌트를 얻을 수 있어도 자기에 맞는 치유법은 스스로 개발해야 한다. 바짓단을 줄이는 것과 비슷하다.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먹으면서 살 안 찔 방법은 없는 것처럼 인생에서 기쁨만 쏙 빼먹는 방법은 누구라도 없다. 재벌 3세든, 대통령이든, 서울 의대에 합격했든, 팔로워 천만 명의 톱스타라 할지라도 삶의 기쁨을 맛보려면 '불운과 고통 패키지'는 반드시 가져가야 한다.


삶의 고난은 반드시 찾아온다.

두려움에 정면으로 마주 서라. 그러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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