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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먹진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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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가 Nov 05. 2023

굴 감바스

일일 요리사로 초대받았다. 윤의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고, 노르웨이에서 가져온 드라이진을 홀짝 마시며 긴긴밤 뜨개질을 하자는 계획이었다. 내 채소요리와 가끔의 해산물 요리를 좋아해 주는 1호 단골인 만큼 무언가 특별한 것을 먹이고 싶었다. 매번 해먹이던 라따뚜이 말고, 새우도 말고. 고민하던 찰나 스쳐 지나가는 재료가 있었다. 바로 굴이다.


- 윤, 굴 좋아해?


- 굴? 내가 찾아먹지는 않는데, 싫어하지도 않아!


- 그럼 굴 감바스 먹어볼래?


- 그게 뭐야? 감바스인데 새우대신 굴이야?


- 맞아! 예전에 욘이랑 있을 때 마트에서 굴 팔길래 해봤는데, 욘 먹고 눈알 튀어나왔어.


- 뭐야 기대돼. 나도 먹어볼래.


집에 있는 올리브유를 많이 쓸 수 있다며 기뻐하던 윤. 재료사면 남고, 먹을 시간은 없는 1인 가구의 딜레마를 오늘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찬 얼굴이었다. 굴 한 봉지 큰 것과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한입새송이 버섯, 마늘을 사들고 윤네집으로 들어갔다. 곁들여먹을 빵과 샐러드 재료도 챙겼다.


굴은 봉지에서 꺼내 채반에 두고 살살 굴려가며 깨끗이 씻어준다. 굴의 수분을 빼는 동안 마늘을 저미고, 다른 채소들은 모두 씻어 방울토마토와 비슷한 크기로 잘라둔다. 감바스를 만드는 데에는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올리브유가 데워지는 동안 재료들을 순서대로 넣으면 된다. 하지만 중간에 한 단계를 추가하면 좀 더 통통하고 맛있는 굴감바스를 만들 수 있는데, 바로 뚜껑을 잠시 덮어주는 것이다.


올리브오일에 마늘과 페퍼론치노를 넣고 향을 입힌다. 매운맛은 오일의 느끼함을 잡아주어 꼭 넣게 된다. 어느 정도 마늘을 넣은 올리브오일이 끓어오르면 버섯과 브로콜리를 넣고 굴을 넣고 뚜껑을 덮는다. 뚜껑을 덮으면 굴이 가진 육수가 나와 좀 더 감칠맛 있는 감바스가 된다. 어느 정도 수분이 생겼다 싶으면 방울토마토를 넣고  뚜껑을 열어준 채로 마저 익혀준다. 토마토까지 익으면 불을 끄고 오레가노와 소금, 후추를 추가해 한번 저어준다. 허브와 후추류는 처음부터 넣게 되면 향이 날아가버려 요리 끝에 넣는 게 가장 향이 좋았다. 취향에 따라 바질 페스토나 스톡같은 것들을 추가할 수도 있다.


빵도 알맞게 구워졌다. 이제 먹어볼까!


다채로운 식감이 어우러진 굴 감바스. 먼저 브로콜리부터. 기름에 푹익은 브로콜리는 정말 맛있다. 버섯과 토마토는 빵에 얹어 한입 가득 베어 먹었다. 감바스의 주인공인 굴도 먹었다. 윤도 꽤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찌푸려진 진실의 미간이 움찔거리고 맛있다는 탄성이 몇 차례 오고 가던 찰나, 눈이 마주쳤다. 같은 생각이었다.


- 파스타 말아..?


- 나도 그 생각했어.. 아 근데 파스타 말면 다 못 먹을 것 같기도 하고.


위장의 컨디션을 생각하는 30대. 파스타를 말고 맛있는 한입을 먹은 뒤 후회를 하느냐 다음을 기약하느냐의 기로에 섰다. 아쉬울 때가 가장 맛있는 법이라며 과식하지 않기를 선택한 둘이었다. 아쉬웠지만 우린 샐러드도 먹어야 하고, 빵이랑 곁들여도 충분히 맛있었으니까!


간단하지만 맛있는 굴 감바스. 날이 조금 더 추워지면 한번 더 생각날 듯하다. 가을이 지나간 후 겨울의 문턱에서 한번 더 일일요리사가 되어보기로 약속했다. 아마도 그날은 윤네집에 있는 올리브유를 다 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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