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 도착한 밴쿠버는 약한 비가 내렸다.
이런 날씨가 계속되면
우울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민을 장려하는 다민족 국가.
나도 여기에선 이방인일 뿐.
저들은 나를 이방인으로 생각할까,
여행자로 생각할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이 나라를
어떤 마음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일까.
돌아온 지 일주일쯤 지나니 한 것과 본 것들 중
남기고 싶은 것들만 걸러지는 것 같다.
첫날 만난 제균씨
바다 건너 본 흐린 날의 밴쿠버 풍경
언덕에서 내려다본 캘거리 시내의 전경
편히 가는 맥줏집
문 닫기 전 늦은 시간에 가면
반값으로 먹을 수 있다는 바비큐집
단 도넛에 쓴 커피
길을 달리다 멈춰서 봤던 작은 곰
불멍이 가능했던 벤프의 숙소
침대에 누워들은 칙칙폭폭 삑삑거리는
화물기차의 기적소리
동네 허름한 맥줏집 달력에 붙어있던 그 산이
마침내 내 눈앞에 펼쳐져있던 모습
설퍼산 기상대 정상에서 청혼하던 남자와
그가 내밀던 반지를 끼려는 여자
그리고 환호하던 그의 친구들
맛있는 햄버거, 또 맛있던 햄버거
꽁꽁 언 호수의 눈밭 위를 끝까지 걸어
남은 생의 다짐을 하게 했던 레이크루이스
벤프 다운타운의 서울옥 감자탕과 소주 두 병
크리스마스마켓의 스노볼
벤프 스프링스 호텔에서 마신 다디단 아이스와인과
마지막날까지 기다려 내리는 것 같은,
내 마음을 알아채고 내리는 것 같았던 눈까지
날씨도, 장소도, 그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온전했던 추억으로 맞춤하듯 마음에 남았다.
이 여행의 시작이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해 보았다.
비행기의 기장이 우리 비행기는 곧 인천공항에 착륙한다는 기내방송을 듣고서야 말이다.
무엇이든 무릅쓰고라도
다음을 기약하고 싶은 용기가 생겼다.
All that thanks, 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