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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우림 Nov 24. 2023

사는 게 팍팍하게 느껴지면 연차 쓰고 카페로 도망치세요

한 달에 100시간 이상 게임하는 동생이 알려준 인생을 재밌게 사는 방법

내게는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 있다. 대게 남자애들이 그렇듯 내 동생도 게임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볼 때, 내 동생이 게임을 좋아하는 정도는 꽤 남다르다. 중고등학생때는 밥 먹고 게임하고, 씻고 게임하고, 학교 다녀와서 게임하고, 자기 직전까지 게임만 했다. 보다 못한 부모님은 그렇게 게임만 할꺼라면 차라리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하라며 타일다. 하지만 동생은 그 정도 실력은 아니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


걱정하는 부모님과는 달리 나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내가 아는 동생은 게임중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임에 빠져있는 건 맞지만, 세세히 따지고 보면 게임에 중독되었다기보다는, 게임을 성실하게 한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공부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대단한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면 뭐든 묵묵히 해낸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 장점 덕분에 다행히 동생은 부모님의 우려와는 달리 무사히 취직에 성공해 번듯한 직장을 다니고 있다.


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었지만 동생의 하루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교 후 게임에서 퇴근 후 게임으로 바뀌었을 뿐. 회사에서 근무 8시간을 꼬박 채우면 정갈히 식사를 하고 깨끗이 샤워를 한 뒤 선풍기 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게임을 시작한다. 평일에는 3시간씩, 주말에는 6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 보통의 직장인이 퇴근 후에 취미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여간 성실하지 않고서야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내 동생은 오히려 퇴근 후 근면성실하게 자신의 취미를 즐기는 건전한 직장인인 셈이다.


가끔 배를 벅벅 긁으며 게임을 하는 동생에게 물어본다. 너는 게임이 그렇게 좋냐? 그러면 동생은 고개를 모니터에 고정한 채 말한다. 누나, 나는 게임을 평생 해도 안 질릴 것 같아.


그럴 때면 동생이 부럽다. 아무리 답답하고 우울해도 단번에 마음을 가볍게 만드는 자신만의 도피처를 벌써 찾았다니. 나는 아직도 일요일 밤만 되면 출근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하고 한숨이 나온다. 앞으로 최소 30년은 근로자로 살아할텐데,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만  3년되기도 전에 챗바퀴같은 직장생활 지겹게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답답한 일상을 해소시켜 주는 즐거움을 일찍이 찾아낸 동생이 부럽다. 동생이 나보다 나이는 어려도, 나보다 더 현명하게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도 삶이 버거울 때 찾는 장소가 있다. 바로 카페다. 현실을 열심히 살다 보면 사는 게 내 마음대로 안될 때가 있다. 업무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무도 내 성과를 알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고,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교통사고처럼 돌발이슈가 발생하기도 한다. 참다참다가 화병이 날 지경에 이르르면 반차를 쓰고 책 한 권과 함께 카페로 향한다.



책은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다. 에세이 같은 책도 좋지만, 가끔 현실을 외면하고 싶을 때는 소설과 만화를 가리지 않고 읽는다. 중간중간 집중이 안될 땐 디저트를 시켜 커피와 함께 먹는다. 향긋한 버터바나 몽글몽글한 에그타르트, 꾸덕한 바스크 치즈 케이크 같은 걸 먹으며 책을 읽으면 마법처럼 스토리가 술술 읽힌다. 긴 서사에 몰입하여 읽다 보면 괴로운 현실이 잊히곤 한다. 아무 책이나 읽으며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는 것이 내 행복으로 가는 열쇠인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행복으로 가는 열쇠가 무언인지 아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언제든지 문을 열기만 하면 행복해지는 방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어느 날 상사에게 엄청 깨지더라도, 진상고객에게 삿대질을 받아도, 어마어마한 업무량에 눈물이 날 것 같아도, 주머니 속 열쇠를 살살 문지르 기분이 나아진다. 퇴근 후에는 이 열쇠로 방문을 열고 반드시 행복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열쇠는 동생에겐 게임이고, 나에겐 카페다. 반드시 기분이 좋아지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무엇이 나의 열쇠인지 잘 모르겠다면 한 번쯤은 나의 취미와 취향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뮤지컬 공연이나 전시회 같은 고상한 취미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내 동생처럼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게임을 좋아할 수도 있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는 클라이밍이나 풋살에서 의외의 재미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공포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며 아찔한 스릴감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느낄 수도 있다. 아니면 나처럼 일상에서 흔히 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에서 힐링을 을 수도 있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내 인생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애초에 삶은 찍어내듯 만들어 완제품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로 채워 나가는 미완성이 아니던가. 매일 살아내는 삶의 합이 내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에 귀 기울이고, 나만의 숨구멍을 만들어감으로써 지금의 나를 발견하는 것이 삶이다. 그러니 해야 할 일로 가득한 삶이 피폐하게 느껴지면 언제든지 게임 속으로, 카페로, 또 다른 나의 취미로 도망갈 수 있게 늘 준비를 해보자. 삶을 살아내다가 힘이 부치면 도피처의 존재를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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