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인서울을 꿈꾸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지방대 출신 교사의 일상
학생들을 지도하면 별별 일이 다 있지만 요즘처럼 교사로서 자존감이 낮아질 때가 있었을까 싶다.
특성화고에 근무할 때도 학생들은 열정적인 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래서 교과세특을 쓸 때도 거침없이 일필휘지로 500자를 채워나갈 수 있었다. 학생들 한 명 한 명의 특성과 개성이 보였고, 교사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물론 몇 몇 학생은 힘들었다.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로 막무가내인 학생도 있었고, 그 학생의 부모가 학교로 찾아왔을 때 임신한 나를 보며 "선생님도 저희 아들 같은 애 낳아서 키워보세요. 그러면 제 마음을 이해하실 겁니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고, 아직까지는 엄마 아빠의 훈육 속에 별 탈 없이 밝게 잘 자라고 있다.
아무튼 지금껏 학교 생활이 힘들었던 이유는 업무와 구조적인 문제들이었다. 합리적이지 않은 의사 결정 구조와 업무 시스템에 힘들어 하며 조직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느꼈지,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행복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지금도 학생들을 볼 때면 행복할 때가 많지만, 몇 몇 학생들의 발언이 내 멘탈을 흔든다.
시험이 끝나서 아이들과 세특을 보완하기 위한 활동들을 하고 있다. 교사인 나는 하나라도 학생의 역량을 관찰해서 써주고 싶은 마음에 이것저것 계획을 했는데 아이들은 당장 수학 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이 낫다며 자습을 하겠다고 한다. 본인은 수시 아니고 정시로 갈거라 생기부를 관리안해도 된다나?!
밤 새워 만든 수업을 학생들이 귀찮다고 거부하는 것, 앞에서 강의하는 교사가 뻔히 있는데도 다른 과목의 문제집을 펼쳐 놓고 문제를 푸는 것, 규율을 지키자고 생활지도를 하면 깐깐하고 짜증난다고 표현하는 것 등등
그 학생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기저에는 이런 거 안해도 대학 잘 갈 수 있다, 좋은 대학을 가려면 국영수가 중요하지 한국사 따위 중요하지 않다는 심리가 깔려 있다.
학생들이 선생님 어느 대학 나왔냐고 물을 때가 있다. 교직 초창기에는 뭣도 모르고 학생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자랑스럽게 대답해줬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대학을 갔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했고, 그것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 실력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출신 대학을 말한 순간부터 학생들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비록 사범대는 아니었지만 부산에서 손꼽히는 대학을 나왔음에도 인서울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내가 나온 대학은 그저 지방대 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같이 근무했던 교사들 중에는 소위 말하는 스카이 출신도 많았다. 하지만 스카이 출신이라고 수업을 다 잘한다는 보장이 있을까? 똑같은 공을 들여 수업을 준비해도 나는 지방대 출신이고, 그 선생님은 스카이 출신이니까 퀄리티가 다르다는 이야기를 학생들 입을 통해 들었을 때의 참담함이란.
학벌이 그렇게 중요한가? 그래 적어도 지금 대학을 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아이들에겐 학벌이 중요할 수 있다. 좋은 대학을 갈 수만 있다면 전공이나 적성도 상관없고, 점수 맞춰서 가겠다는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은 입시 괴물이 되어간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나 역시도 학생들에게 공부해라 잔소리하고,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 상담도 하지만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학벌보다 이 아이의 미래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아이들 사이에서는 내 출신학교를 두고 논쟁이 오고 갔나보다. 어떤 아이가 와서 "선생님 "00대 나오셨지요?"라고 비아냥거리며 물어보는데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지.. 거기다 대고 아니라고 발끈 하기에는 나 역시 학벌주의에 편승해 대학의 서열을 매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어서 뜨끔했다.
"선생님이 너희들을 가르치는 데 어느 학교 나왔는지가 중요해? 선생님이 설령 지금 말한 그 대학을 나왔다고 한다면 선생님에 대한 너희의 평가가 달라지는 거니?" 그렇게 말하고 아이를 돌려보냈다.
20년 전과 비교해 대학의 위상과 입시 결과가 많이 달라졌다. 유명한 인터넷 강의 플랫폼 창업자가 학벌의 시대가 끝났다고도 말했지만, 아이들과 부대끼는 현장에서 체감이 잘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