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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거운물 찬물 Aug 16. 2019

<옥케이, 벨라이스>1부  아부지

개인의 서사로 우리의 삶을 비추다

“여보세요.”
503호 아들이죠? 경비실인데요.”


아~아저씨, 안녕하세요.”
“우편물도 좀 찾아가시고…그리고 아버지가 좀 그래요.”


“예? 어떠신데요? 요즘 경비실에 놀러 안 오세요?”
“자주 오시는데요, 근데 최근에는 술 취해 팬티만 입고 현관 앞에 주무시기도 하고….”


아~그래요? 아저씨가 잘 봐주세요. 제가 내일 갈게요.”
“좀 전에도 올라가 봤는데, 좀 그래요.”


인영이 누나 몰래, 엄마가 싸준 김치와 반찬통을 들고 동명파레스 503호의 현관문을 열었다.


근처 상가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나온 직장인들의 목소리와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파트 바로 옆 대교 건물 주차장에서는 “어서 와, 주차권을 뽑아야 돼”라는 반말로 나를 노이로제에 시달리게 했던 주차장 기계 음성도 들렸다.


격자무늬 창이 달린 미닫이 중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신발을 벗으려고 눈을 내리깔 때, 얼핏 안이 보였고 거실불은 꺼져 있었다. 날이 흐릿하고 북향집이라 어두웠지만 집안 림들이 어수선히 널려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


싸늘했다.


“…, ….”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현관이었지만 싸늘했다. 현관 바닥에 반찬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문을 조심히 천천히 열었다.  


먼저 6미터쯤 떨어진 오른편 부엌 식탁이 보였고 그 뒤로 열린 냉장고 문이 보였다. 부엌 형광등은 양 끝이 노랗게 변해 창백한 하얀빛을 내고 있었다. 두 발걸음을 떼었고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냉장고 앞 식탁에 가려 처음에는 못 봤지만 열린 냉장고 문 앞에 펑퍼짐한 트렁크 팬티를 입고 누워있는 아부지의 하체가 보였다. 눈을 찡그려 다시 한번 초점을 맞췄다. 동자가 살짝 커지는 소리가 들렸다. 바늘만 한 비수가 날아와 귀에 꽂혔고, 주변 소음은 서서히 사라졌다.


발을 뗄 수가 없어 그대로 굳어 버렸다.


1분 정도 서 있다가 한 발을 떼 다시 그곳을 봤다.


검푸른 핏줄이 오목 들어간 아부지의 발이 보였다. 가죽과 심줄만 남아 있는 무릎, 허벅지를 지나 배꼽, 젖꼭지, 목, 턱, 코, 그리고 벗어진 이마가 차례로 보였다. 1미터 앞까지 서서히 다가갔다.


아부지의 눈은 3분의 1쯤 떠 있었고, 동공에는 부엌 형광등이 반짝였다. 떨리는 손을 아부지의 얼굴에 뻗치자 큰 콧구멍에 들어가 있던 파리가 도망쳤다.


“…, …, ….”


무서웠다.


무서워 아부지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급하게 뒤로 한참을 물러서 왼쪽 화장실 벽에 기대앉았다.


'02-119를 눌러야 하나, 그냥 119를 눌러야 하나, 112에 먼저 전화를 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119입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세요?”
“저~, 저~아버지가 누워계신데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 환자 상태가 어떤가요? 심폐소생술을 해 보셨나요?”
“아~그게….”


“환자 몸이 경직됐나요?”
“네~ 각목같이, 그런 듯해요.”


“119 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하고 계세요.”
“아~그게, 소용이 없을 것 같아요.”


“지금 포기하시는 겁니까?”
“예?… 포기요?”


쓰~읍! 하고 큰 숨을 들여 마셨다.


“그건 아닌데…, 빨리 와 주세요.”
“112에도 신고하세요.”


“예?… 제가 해야 하나요, 대신 주시면 안 되나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예, 직접 하셔야 합니다.”

“아~네.”


행님한테 전화를 했다.


“뚜~, 뚜~, 뚜~욱!”

"여보세요?"
“행님.”


"응, 잘 지냈냐?"

" …. …. …. …. "

“아부지가 돌아가신 거 같아요.”


“뭐?!!!…, 지금 어딘데? 왜?”
“몰라요, 집이요, 빨리 오시오.”
“알았다.”


얼마 후 우리 집 부엌은 신발 신은 남자들로 북적였고, 얼마후 그들 사이에서 행님이 허리에 손을 대고 목을 살짝 기울어진 , 굳어버린 아부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찰은 행님에게 변사자 확인을 위해 부검의를 불러야 한다고 했다. 나중에 도착한 형사는 최초 발견자인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언제 집에 와서 발견했나요?”
“엄마 집에 들러 반찬 싸들고 1시 반쯤 왔어요.”


“매일 집에 오나요?”
“아니오, 일주일에 한 번쯤 아부지를 보러 옵니다. 며칠 전에도 왔었는데 경비아저씨가 어젯밤에 전화를 해서 들렀습니다.”


“경비가 뭐라던가요?”
“아부지가 좀 이상하니 들러 보라고요.”


형사는 나와 함께 1층으로 내려가 경비에게 물었다.


“정두진 씨를 언제 마지막 보셨나요?”
“어제 저녁에 집으로 올라가 봤습니다.”


“상황이 어땠습니까?”
“집안이 온통 어지러웠고, 아저씨는 냉장고 앞에 누워 있었습니다. 자는가 싶어 흔들어 보니 눈을 떴습니다. 그러고 내려왔습니다.”


“냉장고 문이 열려있는 것을 봤습니까?”
"그런 거 같았어요. "


그 앞에서 자면 동사할 수도 있는데 그대로 왔다구요?”
“…, 아니 난 그게 아니고, 그래서 아들한테 전화를 했어요.”


"아들에게 뭐라 했습니까?
“아버지 보러 오라고요.”


“야이~ 개새끼야. 평소 아저씨가 당신한테 밥도 사주고 얼마나 잘해 줬는데, 그 상황에서 그냥 방치해? 천하에 개새끼네.”


옆에 있던 이웃집 아저씨가 역정을 냈다. 경찰이 말려 큰 소동은 없었지만 경비가 가고 경찰들도 경비 욕을 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가 있나, 진짜 개새끼네.”


소방대원들은 경찰과 몇 마디를 나누더니 짐을 챙겨 돌아갔다. 웃긴 것은 동네 작은 병원의 장례식장 로고가 새겨진 앰뷸런스가 경찰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명의 직원이 들것을 가져왔고 형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큰 병원 장례식장은 바가지가 많아요. 저희는 국내산 최고급 장례용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겠습니다. 저희 병원으로 가시지요.”  
“아니오, 아니오.”

형은 그들을 보지도 않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포기하십니까’라는 말도, 의사의 출장비를 말하는 경찰도, 장례비를 흥정하는 업자도, 전날 밤 전화한 경비한테도 화가 나지 않았다.
생각이 멈췄다. 아니 머릿속에는 한 가지만 떠올랐다.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보라매병원 장례식장은 조화, 육개장을 나르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허리를 반쯤 수그리고 큰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절뚝이는 엄마가 들어왔다. 얼마 후 인영이 누나가 아부지의 젊은 사진을 보고 오만상을 찌푸렸고, 선영이 누나는 입술을 꾹 다물고 엄마의 어깨를 감쌌다.


회사에 부고를 알렸고 명준이에게 전화를 했다.


“명준아.”

“어! 왜?”
“아부지가 돌아가셨다…, 아부지가 돌아가셨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알았어요 형, 내가 애들한테 연락할게요. 바로 갈게요.”
“그래.”


저녁부터 지인들이 하나둘씩 도착해 나와 맞절을 했다.

 
“어떻게 된 거야?”
“지병이 있으셨나요?”
“갑자기 왜?”
“장지는 언제, 어디로 모셔요? 선산은 있어요?”

수십 번의 같은 질문을 받았다.


나는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아부지의 고향인 청산도에 선산이 있습니다. 가는 길이 멀어 발인은 내일 밤 12시에 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호로새끼’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배가 고팠고, 졸음이 왔다.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지만 난 그런 놈이었다. 액센트를 타고 짐 가지러 집에 갔다가 10분쯤 눈을 붙였고, 육개장과 편육은 맛이 좋았다. 3일장을 버티려면 술은 조금만 먹으라고 선배들이 말했지만 소주도, 맥주도 맛나서 이 자리, 저 자리 옮겨가며 퍼 마셨다.


조의금 봉투를 꺼내 돈을 세고, 새벽 4시쯤 바닥에 누워 거꾸로 사진 속 아부지의 얼굴을 봤다. 나보다 한 살 많은 33살 멋쟁이 형, 포마드를 발라 윤기가 자르르한 2대 8 가르마, 짙은 눈썹, 쌍꺼풀 선한 살짝 들어간 눈, 솟은 광대, 의외로 갸름한 입술….


무엇보다 멋쟁이의 상징인 하얀 양복은 청산도 촌놈을 해양대학교 나온 원양 선장으로 바꿔 놓았다. 1972년 원양어선 떠나기 전, 갓 난 선영이 누나를 엄마가 안고 행님, 큰 누나와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마도로스의 꿈을 안고 떠난 33살 젊은이의 양복이, 35년이 흘러 68살 할아버지의 수의(壽衣)가 됐다.


오전 10시쯤 장례식장 관계자가 입관한다고 가족들을 불렀다. 지하실로 들어섰다. 망자들이 잠깐 머무르는 아파트처럼, 스테인리스 사각 냉동고가 촘촘했다.


아부지는 트렁크 팬티를 벗고 노란 모시옷을 입고 누워 있었다. 냉장고 앞에서, 냉동고 안에서 꼬박 이틀을 지낸 아부지의 얼굴은 냉동식품처럼 거무튀튀했지만 반질 윤이 났다. 반쯤 뜬 눈이 감기지 않아 장의사는 연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아이고~ 아이고~” 엄마의 울음소리가 공명을 울렸고, 모두 울었다. 인영이 누나가 아부지 얼굴을 쓰다듬자 겨우 감겼던 눈이 살짝 떠졌다. 다시 관자놀이를 눌렀고, 감겼다 떴다를 반복하다 겨우 자리를 잡았다.


장의사가 “마지막으로 인사하세요”라고 말하며 수의 모자를 씌웠다. 나는 “아부지 잘 가시오”라고 말했고, 식구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훗날 돌이켜 보니 그것이 아부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땅에 묻기까지는 아직 많은 일들이 남아 있었지만, 아부지의 얼굴은, 그 순간이 마지막인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알았다면 껴안아 비비고 그렇게 쉽게 놓아주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미처 몰랐다.  


둘째 날 저녁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친척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여러 차례 제사를 지내고 손님을 맞고,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서둘러 장례비 정산을 마치고 밤 12시에 버스에 올랐다. 같이 내려갈 친척들이 많아 45인승 관광버스를 빌렸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다란 리무진 차량은 청산도가 너무 멀어 일정상 오지 못했다. 아부지가 누워있는 관을 버스 아래 짐칸에 싣고 그 위 자리에 내가 앉았다. 아부지 배 위에서 잠자고, 발 비행기 탔던 3살 때를 떠올리며 나는 그 위에 앉았다.


전화기가 울렸다.
“형 어디세요? 밤 새려고 집에 들렀다 지금 왔는데, 지하 1층 201호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어요”
친한 동생 광수였다.


“응, 청산도가 멀어 일찍 출발했어.”
“정말요? 여기 서성이는 형 친구 같은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 전화오겠지, 와 줘서 고마워, 잘 모시고 올게.”


버스는 밤새 달려 새벽에 완도 여객터미널에 도착했다. 추적추적 비가 왔다. 대합실 의자에 앉아 자는 사람도 있었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이런저런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를 두드려 사람 숫자대로 우비를 사 왔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청산도 가는 '삼영호'


 배가 뱃고동을 렸다. 아부지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청산도 배가 비와 파도를 갈랐다. 엄마는 여객실 바닥에 옆으로 누워  나즈막히 읊조렸다. “그라고 가고 싶었던 고향으로 죽어서 가네~ 죽어서 가네~. 


약 한 시간이 흘러 도청리 방파제가 보였다. 선창에는 서울까지 올라오기 힘든 친척 어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버스가 선창에 들어서자 순진 고모가 차 옆구리를 두드렸다.


“아이고, 무심한 어른 놀보야, 너 하러 이리 빨리 가냐? 아이고 원통해라 오빠야, 너 뭐하러 이리 빨리 가냐? 먼저 간 행님네 보러 가냐, 엄마 아부지 보러 가냐, 아이고 놀보야, 놀보야~”


청산초등학교 뒤편 선산은 이미 만석이었기 때문에 약방 큰 아부지가 사놓은, 지리가는 길 언덕 위 밭에 아부지의 묏자리가 결정됐다. 아부지는 생전에  곳을 마음에 들어했다. 바다가 보여서였을까?


철수 할아버지가 인부들을 불렀고 마을 어른들도 모자와 수건을 둘러쓰고 산을 올랐다. 전날부터 포클레인이 길을 텄지만, 농사를 안 지어 나무와 긴풀로 메꿔진 산은 울창하고 위험했다.


이미 파 놓은 구덩이 주변을 약 30명 정도가 둘러싸았고 요란한 통곡 속에 아부지의 관이 제자리로 들어갔다. 자식과 조카들이 한 삽씩 덜었다. 돗자리에 차려진 제삿상에 술을 따르고 절을 하고, 곧이어 제문을 읊었다.


“고무래 정(丁)씨 금성파 42대 손, 학생(學生) 두진~”


땅으로 돌아가는 아부지를 마지막으로 봤다.
인부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흙을 덮었고, 그 위로 떼(잔디)가 올려졌다. 사람들은 원을 그리며 땅을 밟아 단단히 굳혔다. 맷둥 바로  업자들이 걸어 놓은 새끼줄에는 저승가는 노잣돈들이 매달려 있었다.


나는 멍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냥 스쳐가는 풍경을 천천히 빙~둘러봤고, 반쯤 감긴 눈에 지리 바다의 하늘이 비췄다. 그 하늘위로 어릴적 내 손을 잡고 선산에 올라 조상님들의 맷둥 하나하나를 설명하던 아부지의 모습이 뿌려졌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그냥 어금니를 살짝 깨물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번득 정신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생각나 주섬주섬 가방을 찾아 열고, 집에서 가져온 아부지의 ‘틀니’를 꺼냈다. 맨질맨질 윤나는 아부지의 이빨을 옷자락에 슥슥 문질렀다. 아부지는 티끌 하나 묻지 않은, 칼주름 잡힌 백바지를 즐겨입던 멋쟁이였기 때문에 한 치도 소홀할 수 없었다. 그리고 스댕으로 만들어진 아부지의 밥그릇으로 맷둥 머리맡을 50센티미터 쯤 팠다. 오른쪽 눈을 왼 손가락으로 천천히 비비며 고개를 반쯤 기울인채 틀니와 밥그릇을 묻었다.



울 아부지, 그 강을 건너서도 맛나게 자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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