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동상(銅像)
당신은 ‘김일성’ 인가요?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南海의 섬
뭍에서 떨어진 은하수처럼 흩뿌려진 섬,
그중 사람이 사는 “섬” 청산도(靑山島)가 있다.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하며,
우리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히는 5분 50초 롱테이크(Long take)를 촬영한 <서편제>의 당리 황토 “길”
소리꾼 유봉의 의붓딸 송화와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추던 길.
“청산도 처녀가 시집가기까지 쌀 서 ‘말’을, 여서도 처녀는 쌀 서 ‘두’를 못 먹는다.”
-남도 속담
三多의 제주(濟州)가 지척이라
바람, 물, 여자가 많고,
거친 땅, 모진 해풍, 산이 많아,
뱃일 말고는 퍽퍽한 가난의 섬 “청산도”
◆완도군수 김종식
지난 2013년 청동(靑銅)이 섰다.
크기는 아그리파(agrippa) 석고 흉상쯤 되지만 좌우로 그의 업적과 약력이 화강암에 새겨져 병풍처럼 와삼을 둘렀다.
청산도가 낳은 위인일까?
완도군이 2009년 세운 장보고 동상처럼 랜드마크일까?
뜻밖에도 동상은 전 목포시장 김종식이다.
그는 완도군수를 지냈으며, 이후 광주부시장을 거쳐 목포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동상을 세운 예는, 적어도 20세기 이후로는 소련의 스탈린이나 중국의 마오쩌둥, 그리고 38선 북쪽의 김일성 일가 외에는 들어보지 못했다.
역사는 관념의 상징이다.
예로부터 위정자의 덕이 백성을 감음케 하여 공덕비로 그 공을 기렸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현역 위정자 동상이 세워진 이유는 뭘까. 비석(碑石)으로는 그 공을 다 기리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급(級)”이 달라서일까.
김 전 시장은 2010~2014년간 완도군수로 재임 중에 청산도를 비롯한 완도군 섬들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그 노력의 대가로 민선 지방자치 선거에서 연거푸 당선되었다.
특히 예산을 많이 유치해 토건(土建)으로 “돈”이 돌게 했다.
인근의 진도나 흑산도, 보길도, 신지도 등이 걸었던 길이다.
그로 인한 난개발과 환경훼손, 외지인의 토지 점유 등을 지적하는 이도 있지만 그 섬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면 흠잡을 일은 아니다.
그런데 김 시장은 본인의 “훼예포폄”을 다른 이들처럼 역사의 판단에 맡기지 않고 동상을 세웠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민주주의 아버지 리승만 박사
군수 동상의 건립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권유와 성금에 힘입어 나중에 “승인”했다는 약력서는, 3선 추대 때 대통령직을 세 번 거절했다가 수락했다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기억도 겹친다.
대통령 보다 박사(博士)라 불리길 원했던 이승만은 프라이드(Pride)가 강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강한 자존심은 주변에서 만족시켜줘야 했다. 청산도 출신이 아닌 김 전 시장이 본인의 동상을 승인한 배경에는 주변의 분주한 노력이 있었다.
논조(論調)에 사심(私心)이 묻히지 않게 고민하고 또 고민해 글을 썼다.
나는 청산도민들이 겪었을 배고픔과
△일제 △4.3 △보도연맹 △빨갱이… 등 현대사를 관통했던 수난사를,
“가족의 죽음”으로 겪어낸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귀(耳)로만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