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는 형부가 언니를 아기 다루듯 잘해주잖아."
동생의 시선엔 내가 남편한테 사랑받고 사는 모습이 그렇게 비쳤나 보다.
남편은 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언니 소개로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의경이었다. 대학교에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의경 복무를 하던 중이었다. 스포츠머리에 숫기가 없었던 그와의 첫 만남은 사실 뜨뜻미지근했었다. 두 번째 만나면서 순수함에 끌렸고 세 번째 네 번째 만남이 이어지면서 진실하고 착한 심성에 더 끌리게 되었다. 그렇게 둘이 손을 잡고 그 소개해 준 언니와 동생 앞에 떡하니 나타났었다.
우리가 돌아간 뒤 소개해준 언니가 동생한테 하는 말이
"쟤들은 친구로 지내라고 소개해줬더니 벌써 사귀는 거야?"
금방 친해져서 손을 붙잡고 나타났으니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알아가기에 바빴다. 의경은 휴가 나올 때만 만날 수 있기에 그 시간이 귀하고도 아쉬운 시간이었다. 가끔 만날 수밖에 없어서 편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아니 이 남자는 친절한 것도 모자라서 편지는 왜 이렇게 잘 쓰는지, 글씨는 또 왜 그렇게 잘 쓰는지. 서로를 알아가게 되면서 친근함이 형성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제대하게 되었다. 복학하기 전까지 몇 개월의 시간이 있어 일자리를 구하더니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신문 배달, 식당 서빙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참 믿음직스러웠고 멋있었다. 책임감, 생활력 있는 모습이 든든했다. 본인의 삶은 본인이 책임지고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이 그 시절엔 내게 큰 부분이었다. 무책임했던 아버지를 보며 살아왔기에 그의 그런 모습은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그는 복학하게 된다. 한 학기가 끝난 후 그의 아버지께서(지금은 시아버지) 결혼을 제안하셨다. 아직 학부생인데 왜 그런 제안을 하셨지? 지금도 의문스러운 부분으로 남아있다. 우리들은 서로 사랑했으니 아버님의 뜻을 따랐다. 갑자기 상견례를 한 후 결혼식을 준비하게 되었다. 학부생이니만큼 모든 것을 소박하게 준비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남편의 자취방에서 우리의 신혼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그는 대학생이면서 얼떨결에 가장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다. 나 또한 한복 의상실에 취직했고 결혼생활이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덜컥 결혼하여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은 젊음을 불태우며 놀아본 적도 없이 학생인 상태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버렸다. 결혼 후 이듬해 5월 첫 아이가 태어났다. 남편의 어깨는 더 무거워졌고 시댁에서 경제적 도움을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다니던 남편은 가정을 책임지기 위해 학업을 그만두고 취업의 전선에 뛰어든다. 약 20여 년 전에 그렇게 들어간 회사에서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이 친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고 했다.
"너는 한 번도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본 적이 없잖아."
그 말을 들었던 남편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곱씹어 보니 본인의 인생이 뭔가 처량해 보였나 보다. 그 말을 듣고 가장 가슴 아팠던 사람은 나였다.
너무 힘들었던 사람을 만나 21년의 결혼생활 동안 끊임없이 배려해주고 보듬어주며 경제적인 부분까지 부족함 없이 채워주기만 했으니 지칠 때도 된 것이다. 아니 오래 버텨준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자기야, 회사 당장 그만둬. 할 만큼 했어. 충분해. 이제부터 내가 다 책임질게.'였지만 나는 남편보다 돈을 더 벌어올 자신이 없었다. 그저 들어주는 것이 전부였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이런 무능한 내가 싫어서 남편에게 미안하고 미안했다.
남편이 혼자 있고 싶다며 휴가를 냈다. 진심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지쳤던 마음을 추스르기를 원했다.
연애 시절부터 쉼 없이 달리기만 했던 남편.
변함없이 사랑해주고 아껴줬던 남편.
언제나 가족이 우선이었던 남편.
늘 양보만 해주던 남편.
떨쳐버리지 못한 우울증에 시달리느라 천사 같은 남편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던 나.
두 아들 키우느라 정신없다는 핑계로 남편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던 바보 같았던 나.
가장 소중한 사람은 남편이었는데 더 늦기 전에 남편의 마음을 챙겨야 했다. 진정으로, 달리는 기차에서 한 번도 내려본 적이 없는 남편이 한없이 애처로워 보였다. 결혼해서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로 나는 충만했었는데 그 충만함은 남편의 희생과 사랑의 결정체였다는 것을 가슴 깊이 새기지 못했다. 남편이 지쳐버린 것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아 더 괴롭고 마음이 아팠다. 가장으로 살게 하는 것도 모자라 원 가족으로부터 가져온 우울증을 결혼생활 내내 달고 살면서 징징거렸던 나를 챙겨달라고만 한 것 같아 한없이 미안했다.
남편을 너무 힘들게 했다는 죄책감에 남편이 휴가 가고 없는 동안 눈물이 흘렀다.
'난 참 나빴었구나. 난 참 못됐었구나.'
남편이 돌아오면 남편이 나를 사랑해 줬던 것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이 남편을 사랑해줄 것이다.
돌아온 남편이 하는 말이
"쉬면서 좋은 곳을 자꾸 가고 싶더라고. 그런 거 보니 내가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정말 잘 쉬다가 왔어. 나름 만족해."
잘 쉬고 와준 남편이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사실 가슴이 철렁했었는데 무엇보다도 정말 잘 쉬다가 왔다는 남편한테 뽀뽀를 백번도 더 해주고 싶었다. 나는 남편이 휴가 다녀온 이후로 곁에 더 붙어 있었고, 더 혀가 짧아졌다.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 쉴 수 있게 남편에게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