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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피차 Oct 11. 2022

존경을 표할 때는 줄을 뚫거나 칸을 띄운다

  한자문화권에서 글을 쓸 때는 세로쓰기가 기본이었다. 기원은 대나무에 세로로 쓰고서 오른쪽으로 모아서 엮은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왼쪽에 두어야 오른손잡이들이 쓸 때 손에 뭍지 않을 텐데 하고서 찾아보니 왼손으로 종이를 잡고 쓰느라 그렇다는 썰이 있다. 현대인으로서 과거를 예측해봤자 별로 소득이 없는 이유가 이런 것 같다. 비슷한 환경을 재현해본다고 하는 것도 지금 만든 한지에 지금 만든 붓으로 써 봤자 예전에는 둘둘 말린 종이에 쓰고 잘라서 어디에 보내고 하는 것 정도로 상상해내지 못한다. 

  과거인들은 이런 생활이 일상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이런 생활밀착형 정보는 놀라울 정도로 기록에 남아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더더욱 정보가 남아있지 않는데 너무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 국가유지에 거의 대부분을 인력에 의지하면서도 인정해주지는 않는다.  반도체, 조선업 등 부가가치가 큰 업종을 하는 세계수준의 대기업은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대입을 준비하면서 쓸 수 많은 좋은 볼펜이나 공책 브랜드는 없는 한국.

  딴 이야기가 길었는데 한자는 띄어쓰기 체계도 없는데 이는 종이가 부족했던 상황 탓도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 펴내는 사서삼경 류에는 현대중국어와 비슷한 문장부호가 사용되어 읽기가 훨씬 쉬운데 여기서도 띄어쓰기는 없고 대신 쉼표로 문장을 한국어보다 좀 더 짧게 끊는 용도로 사용된다. 아무래도 어조사가 많지 않기 때문일 듯 하다. 그런데 한문 문법에서 유일하게 띄어쓰기를 하는 경우는 아주 높은 사람 즉 왕이나 황제를 호칭하는 말을 쓸 때 존경의 의미에서 한 칸을 띄워 쓰거나 줄을 바꿔 한 칸 높여 쓰거나 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종.조 식의 호칭은 죽은 후에 붙여진 묘호이다. 면전에서는 주상전하라고 불렀을 것이고 글로는 上 이라고 썼다. 그 당시의 왕의 이름은 쓸 수 없었으므로 일부러 잘 쓰지 않는 어려운 한 글자로 정했고 어쩌다 정 쓸 일이 있으면 비슷한 모양으로 바꿔 썼다. 손글씨나 활자인쇄라면 그렇게 큰 일은 아니지만 목판인쇄라면 꽤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보통 공책같은 모양의 줄 안에서 해결하는 편이지만 오버를 한 건지 실수를 한 건지 아예 테두리를 뚫어 내어쓰기를 한 경우도 간간히 보인다.      

어제충헌공신도비명(御製忠獻公神道碑銘)[민속83806,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본문에 어제임을 표시하기 위해 한 칸에 ‘어제’ 두 글자를 전서체로 새겨넣었다. 자궁(慈宮: 왕비 출신이 아닌 왕의 생모)과 상(上: 임금)을 한 칸 띄어쓴다. 자신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인 신(臣)은 작게 쓰고 왕의 뜻인 교(敎)는 띄어쓰거나 두 칸 높여 썼다. 그 외에도 왕과 관련된 경연(經筵), 실록(實錄), 규장각(奎章閣) 등의 단어 앞에도 한 칸 띄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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