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 2묘 가족의 탄생
김태용 감독의 영화 <가족의 탄생>이 개봉했을 때, 정확히는 44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았을 때 나는 어떠한 가능성을 엿보았다. 새로운 가족을 선택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
<가족의 탄생>은 <여고괴담 2>와 <만추> 등을 연출한 김태용(어쩌면 탕웨이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감독의 2006년작으로 혈연관계가 아닌 이들이 한 집에 모여 결국 가족의 형태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다. 형철(엄태웅 분)은 애인인 무신(고두심 분)을 누나인 미라(문소리 분)에게 소개해주기 위해 집을 찾고, 그대로 무신만 두고 혼자 집을 나가버린다. 오갈 데 없게 된 무신은 그 집에서 미라와 함께 살게 되는데 여기에 또 무신의 전남편의 전처의 아이, 그러니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남편의 딸이 찾아와 함께 살게 된다. 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어쩌다 모인 이 군집을 감독은 가족이라 부른다.
이후 같은 맥락으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어느 가족> 등을 연출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에 매료됐다. 대체적, 대안적 가족을 제시하는 작품들.
한자 집 가家에 겨레 족族. 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로 혈연 혹은 법적 관계로 해석한다. 하지만 가족의 영단어 family와 비슷한 의미의 '가정', '식구' 등을 보자면 조금 애매해진다. '같은 지붕 아래에서 사는 사람들의 집단'이란 어원을 가진 family와 집 가家자에 뜰 정庭을 쓰는 '가정', 밥 식食자에 입 구口를 쓰는 '식구'까지 가족을 묘사하는 단어의 핵심은 혈연관계가 아닌 집이다. 이름을 붙인 이가 시대가 바뀌며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될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한 집에 살 거라는 건 상상도 못 했을 수도 있지만 가족이란 한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부대끼며 사는 것이 관계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가정'의 정이 뜻 정情이 아닌 것에도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가족은 혈연관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정을 나누는 관계는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내 가족이 그렇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성장하는 동안 가족의 끈끈함 혹은 애틋함은 느껴본 적 없는 듯하다. 부모 두 명에 자식 네 명으로 6명이나 되는 대식구인데도 말이다. 바다 사람 특유의 거친 성정 때문일까? 부모와 피부가 닿았던 기억이 없다. 유년기 시절의 기억이라면 부모는 키우기 바빴고 나는 크기 바빴다. 공통의 목표를 향해 가는데도 그 관계는 좀체 가까워지지 않는 평행선 같았다. 부모는 어서 이 육아가 끝나기를 바랐고, 자식은 커 갈수록 더 많은 관심과 자원을 바랐다.
어쩌면 부모는 자식이 버거웠을 수도 있고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사랑이 박하고 돈이 궁한 집안의 자식들은 서로가 경쟁자다. 더 많은 사랑과 자원을 받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부모의 관심을 끌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가 아픈 아이가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받고 싶은 애정의 양은 좀체 채워지지 않았다.
한 번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껴본 적 없는 내가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까? 부모가 싸우는 것만 보고 자란 내가 제대로 된 연애를 할 수 있을까? 가족 안에서 언제나 분노만을 느끼는 내가 가정을 이룰 수는 있을까?
아들은 아빠 팔자를 닮고 딸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저주가 있다. 두려웠다.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나 엄마처럼 살까 봐. 아빠는 조금 자유로운 편이고 엄마는 조금 희생하는 편이다. 나는 엄마처럼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애써 부정하며 살아왔음에도 성인이 된 지금, 엄마가 했을법한 선택을 하는 스스로에게 소스라칠 때가 있다. 결국 나는 엄마와 비슷한 생을 살게 될까? 피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해 갈 수 없는 저주가 두려워 비혼을 선언했다. 자식과 가정에 대한 두려움까지 모두 없애주는 해결책이었다. 비혼을 선택한 것이 잘 한 선택인지 잘못된 선택인지는 알 수 없다. 멀티버스 너머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내가 결혼을 해 불행하거나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비혼으로 살아가는 내 삶에서는 해보지 않은 결혼과 비혼을 결코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엄마의 팔자는 피했지만 홀로 살다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무렵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고양이를 키우게 된 것이다. 27살에 생애 처음으로 반려 동물을 입양한 경험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평생을 피보호자로 살던 내가 보호자가 된 것이다. 작고 소중한 존재를 돌보는 것은 내 시간과 체력 그리고 돈을 많이 앗아갔으며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야 하고 놀고 싶을 때는 놀아줘야 하고 졸리면 재워야 했다. 고양이가 무릎에서 잠들 때면 혹시라도 꺨까 봐 몇 시간이고 의자에 그대로 미동도 않은 채 앉아 있었다. 그러니까 사랑을 했다. 다행이었다. 나도 무언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쩌면 여태껏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마구 사랑을 주고 마구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기를.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에서 충만함을 느꼈고 나는 처음으로 가족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자라나며 다들 부모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가?
이미 성인이 다 된 후에서야 겨우 고양이를 통해 처음으로 유대감을 느꼈다. 처음엔 이 감정이 뭔지도 몰랐다. 그저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고 고양이도 나를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아파서 갔던 동물 병원의 의사가 우리의 모습을 보고선 ‘집사와 고양이가 유대감이 참 깊네요’라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이 감정의 정체를 알았다.
유대감.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공통된 느낌'.
고양이가 8살이 되던 해 지금의 반려인, 가또를 만났다. 말하자면 교통사고 같은 거다. 전혀 계획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었다. (소름끼치는 건 가또의 외모와 성향에서 아빠의 요소가 보인다는 것이다.) 흔히들 결혼할 사람은 금방 알아본다고 하지 않나? 나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가또가 나와 결혼할 사람일 거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결혼할 사람을 알아보는 방법은 유대감이었다. 내게 안정감을 주어 날뛰는 불안을 잠재워주고 끈끈하게 결속되어 불신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끈끈함. 이런저런 연유(엄마의 팔자를 닮고 싶지 않다는 이유 포함)로 우리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형태로 살기로 했지만 결혼을 하든 하지 않든 우리가 느끼는 유대감은 그대로였다. 결혼이라는 형식보다 우리가 공유하는 유대감이 더 중요하다.
내 고양이와 가족이 되기로 했던 것처럼 나는 가또와 가족이 되기로 했다. 혈연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내게 가족의 정체성을 일깨워준 건 <가족의 탄생>이지 않나. 부부라는 건 혈연이 아닌 계약에 의한 관계이니 가족 구성원 중 부부와 비슷한 나와 가또의에게 피 따위가 중요하진 않았다.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나와 가또가 가족이라고 가또가 내가 태어난 가족구성원과도 가족인 건 아니다. 내게는 가또와 두 고양이로 구성된 가족이 있고, 피로 이어진 혈연관계의 가족이 따로 존재한다. 두 개의 독립된 가족이 있는 거다.
작년엔 함께 고양이를 입양했다. 사실 고양이와 한 집에서 살면서도 가또는 ‘젤라의 고양이를 챙겨준다’는 정도로 고양이를 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가또에게 경계심을 한껏 품은 채 좀체 곁을 내어주지 않았으니 가또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하다.
함께 입양한 아기 고양이는 나와 가또 할 것 없이 이 무릎 저 무릎 옮겨 다니며 놀아달라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뜬 채 우리 모두를 바라봤다. 우리는 아기 고양이에게 ‘수박’이라고 이름 붙였다. 언젠가 가또가 정년퇴임을 하면 함께 수박 농사를 짓자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가또네는 오랫동안 수박 농사를 지었던 농가로 농사에 대한 로망이 있는 내가 가또에게 제안한 것이다. 농사의 실체를 알고 있는 가또는 절대 그것만은 하지 않겠노라 손사례를 쳤지만 나는 그때쯤이면 과학 기술이 발전해 농법도 편해지지 않겠냐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고양이 수박이는 우리가 먼 훗날 키우게 될 수박 대신 지금 정성을 다해 키우는 존재다. 우리는 그렇게 아기 고양이 수박이까지 두 인간과 두 고양이가 함께 하는 2인 2묘 가족이다.
가또와 내가 가족이라는 증거는 없다. 법적인 가족도 아니고 공동명의의 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아, 같은 주소로 전입신고는 되어있다. 이웃사촌도 사촌이라는데 같은 지붕 아래서 함께 끼니를 챙겨 먹으면 사촌보다는 가까운 사이이지 않겠나. 한 집家에서 같은 뜰庭을 쓰고 함께 식사를 사람을 룸메이트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하지 않나. 그래서 나는 가족이라 부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CJWAa4H0Lic&t=814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