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살아내려는 마음
저녁 공기의 으슬함에 아직은 움츠러들게 되는 4월, 동네는 봄이 올 틈을 만드느라 바쁘다. 스티로폼, 고무 다라이, 드럼통, 플라스틱 화분까지 새 생명을 담을 집들이 꿈틀꿈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겨우내 시든 이파리와 줄기를 정리하고 새싹이 들 자리를 만드는 어르신들의 분주함에 봄이 옴을 느낀다. 화수동에는 봄의 틈바구니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특이한 장치가 있다. 바로 둥근 화분 위에 자리한 ‘선풍기 덮개’들이다. 늦겨울 어느 날 동네 산책을 하다 눈에 띈 선풍기 덮개는 알고 보니 동네 대부분의 화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흙밖에 없는 빈 화분을 덮은 선풍기 덮개. 이들은 대체 무슨 쓸모일까? 궁금한 나머지 함께 산책하던 박할머니께 여쭤보았다.
“할머니, 빈 화분에 저 선풍기 덮개들은 대체 무슨 용도에요?”
“아~ 그거. 고양이나 새들이 화분에 변보거나 헤집지 말라고 막아 둔거지.”
“ !!! 세상에 그럼 이 많은 덮개들은 다 어디서 나요?”
“아~ 저 집이 전파사를 해. 그니까 잔뜩 있을 수 있지.”
길냥이들이 많은 동네에서 고양이들과 공존하며 새싹을 지키기 위한 장치라니! 이 둥근 덮개가 평화를 가져오기도 하는구나. 새삼 처음 시도했을 누군가의 재치에 감탄했다. 대문 밖, 계단, 창틀, 옥상 곳곳에 화분과 텃밭이 가득한 동네에서는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먹으며 온 몸으로 가는 계절을 살아내려는 마음이 느껴진다. 간혹 애지중지 키운 화분이 사라져 화가 나기도 하지만, 또 어느 날 길을 가다 소담하게 핀 꽃들을 보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어느 봄에 동네 어르신께 여쭤본 적이 있다.
“할머니, 허리도 아프신데 이 화분들 가꾸느라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지. 그래도 이렇게 가꿔서 꽃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면서 기분 좋아지잖아.”
계절을 느끼며 출근할 수 있는 기쁨 또한 누군가의 마음 덕이었음을 알게 된 그 봄을 나는 잊지 못한다. 당신의 봄에도 따뜻함과 작은 기쁨이 함께하길 바라며.
2023년 5월 1일
봄과 여름이 공존하는 날에
진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