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은 추운 겨울을 그렇게 죽은 듯 살아낸다.
“뭐든지 마무리를 잘 해야 돼. 아빠가 요즘 마무리하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그렇더라.”
어제의 마무리는 아빠의 이 말과 함께였다. 곰곰이 곱씹다보니 한 해를 시작하는 1월에 나의 마무리는, 당신의 마무리는 어땠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의 나를 돌아보니 호기롭게 시작한 한달 프로젝트는 목표치의 딱 절반을 썼다. '시작이 반이고, 반을 썼으니 제법 할 만큼은 했다!' 라고 후하게 칭찬해주고 싶지만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며. 그럼에도 다시, 올해에도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추운 듯 춥지 않은 듯 제법 포근한 날들이 긴 겨울이었다. 그럼에도 겨울은 사람과 나무, 길을 얼려 움츠러들게 한다. 곳곳에 바싹 마른 가지들이 앙상하다고 생각했다. 한 해 동안 마음껏 펼쳐놓았던 화분들을 정리하고 여러 해 동안 키울 수 있는 것만을 골라 안으로 들였다. 안에 들여놓았던 화분들 중에서도 겨우내 마르고 병든 것들을 며칠 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앙상한 가지를 잘라내고, 마른 잎을 거두는 일은 생각보다 귀찮고 손이 많이 간다. 그럼에도 다시 들여다보며 가꿔야 하는 이유를 이번에 알았다.
죽은 줄 알았던 백합 화분의 마른 가지를 잘라 밖으로 내놓으려던 때, 새로 트고 있는 이파리가 보였다. 색도 흙색이어서 가까이서 들여다봐야 겨우 보였다. 도로 화분을 안에 들이고 앙상한 가지에 붙은 마른 씨앗을 거둬 흙에 뿌렸다.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년에 틔운 씨앗이 또 얼마나 심겼을지, 뿌리가 뻗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미 죽은 것처럼 보인 꽃의 마무리는 어쩌면 다시 새 잎을 틔우는 것까지일지도 모른다. 메마른 앙상한 가지가 끝이 아닌 것이다. 식물들은 추운 겨울을 그렇게 죽은 듯 살아낸다.
사람의 겨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가꾼 것들을 살펴보고, 이어갈 수 있는 것과 아닌 것, 바로 심겨지지 않더라도 언젠가 싹틔울 수 있는 것, 그동안의 방식과 다르게 가꾸어야 하는 것을 구분하고 채비하는 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움트는 일이 곧 마무리이자 시작이 된다. 작년의 부끄러움이 있고서야 올해에는 더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당신에게도 곱게 틔울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1월이 되기를, 1월의 좋은 마무리가 한해의 좋은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올해의 첫 글을 마무리 한다.
2024년 1월 23일
콧물이 얼도록 추운 겨울에
진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