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계단의 계단참에 앉아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가 참 힘든 몇 주였다. ‘5분만 더’가 쌓여 30분이 넘어가는 나날들. 겨울답지 않게 비가 와서. 겨울이라 날씨가 너무 추워서. 변덕스러운 날씨도 탓해봤지만 결국 원인은 스트레스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 보면 1~2월에 여지없이 보릿고개가 찾아온다. 그저 ‘돈이 좀 궁하다.’라고 넘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돈이 궁한 건 생각보다 큰일이다. 이럴 때면 ‘다른 알바를 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가도, ‘장사꾼이 다른 알바를 구하는 건 장사를 접는 것과 같은 일이 아닐까? 어떻게든 장사를 잘할 궁리를 하는 게 맞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내 업으로 고개를 넘어갈 궁리를 해본다.
복잡한 머리를 이고 동네를 걸으며 계단 사진을 찍었다. 도르리 바로 옆에는 근방에서 제일 높은 ‘화도고개’가 있다. 높은 고개가 있다 보니 동네 곳곳에 다양하게 생긴 계단들이 있다. 단 하나도 똑같이 생긴 모양의 계단이 없다. 모두 각각 제 집에 맞게 빚은 계단들이다. 바닥과 문 사이를 잇고, 집과 집 사이를 잇고, 옥상과 옥상 사이를 잇는 계단도 있다. 계단들을 보고 있자니 ‘지금 내가 한창 계단을 오르는 중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라도 좋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꾸준히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단계로. 그리고 그다음엔 ‘일을 함으로써 주변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가’의 단계로. 힘을 들여 나아가는 중이구나.
그래도 지금은 힘에 부친 상태구나! 인정해야겠다. 계단에도 방향을 바꾸거나, 중간에 쉬어갈 수 있도록 여유를 두는 계단참이 있다. 저마다의 계단이 있고, 나는 내 계단의 계단참에 앉아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쉬다 보면 다시 또 계단을 어떻게 오를지 생각이 나겠지.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힘을 모아두어야지. 혼자서 오르는 계단이 아니니 손을 잡아주는 사람도 있고, “너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니?” 물어주는 사람도 있다. 혹시 지금 당신에게 그렇게 물어오는 사람이 없다면 이 글이 그런 물음이 되길 바란다. 도르리에서 화도고개를 올라가면 길 한 켠에 파라솔과 벤치가 있다. 어느 누군가가 힘든 고개를 넘었으니 쉬어가라고 두었을 것이다. 언젠가 파라솔은 아니더라도 작은 의자 한 켠을 내어둘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2월의 산책을 마무리한다.
2024년 2월 29일
소나기 예보가 내린 뒤숭숭한 날에.
진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