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사람에게 생애주기가 있듯 건축물에도 생애주기가 있다.
"있는 걸 잘 가꾸는 것보다 뽑아내고 새로 심는 게 더 쉬우니까."
며칠 전 친구와 녹지광장을 걷다 내뱉은 말이었다. 내가 뱉고도 참 자기중심적인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식물을 가꾸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내 옆에 자라고 있는 식물이 어떤 상태인지, 물·바람·햇볕 중에 뭐가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를 알려면 관심과 노력이 필요했다. 숨이 붙은 것 같은데 비실한 모습을 볼 때면 뽑아버리기도, 그냥 두기도 난감한 때가 있다. 대개는 내가 최소한의 관심만 기울여도 식물은 자기 힘으로 살아낸다.
이제 막 겨울을 지난 녹지광장은 화단에 있던 식물들이 뽑혀나가 비어 있었다. 곧 새로운 꽃들이 심어질 터였다. 공공에서 관리하는 화단을 보면 다년생의 식물을 오래 잘 가꾸는 모습은 드물다. 한 해도 채 가지 않아 새 생명을 심고 뽑는다. 예로, 관공서 화단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팬지꽃은 원래 겨울에도 노지월동이 가능한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최근에는 기존 보다 꽃이 크고 일이 년 남짓 살도록 변종된 값싼 대두 팬지를 많이 심는다. 그마저도 철마다 다른 꽃을 심느라 봄을 넘기면 파헤쳐진다. 제각각 다른 속도와 주기에 맞게 심고 가꾸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이 우리 사회에선 잘 이뤄지지 않는다.
집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식물과 사람에게 생애주기가 있듯 건축물에도 생애주기가 있다. 건축물의 생애주기는 건축물이 지어져 유지·보수되고 해체되기까지의 전 과정을 일컫는다. 자연에 존재하는 일종의 순환 과정이 건축물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이 사회 안에서 사회적 관계망을 쌓으며 삶을 영위하듯, 건축물에도 그 나름의 사회적 역할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런 건축물의 사회적 가치를 미리 인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최근 나쁜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한 가지 질문을 들었다.
"건축물이 오래 서 있을수록 좋은 건가요?"
'오래 유지될수록 좋은 건물이다.'라는 통념을 깨고 "오히려 너무 오래되어 쓸 수 없는 건축물은 해체되는 게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들기도 해요. 잘 해체되고 다르게 쓰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고요."라는 의견을 듣고 적잖이 공감하기도 했다. 건축물도 소모품이기 때문에 사용하다 보면 닳고 낡는다. 사람이 사용하기에 너무 낡은 건축물은 건강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해체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체하기 전 닳고 낡은 것을 살펴 고치는 것, 무엇을 남기고 가꿔야 하는지 분별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뽑혀나가는 건물들을 볼 때면 안타깝다. 오래 보며 있는 것을 잘 가꿀 때에만 마주할 수 있는 풍경과 가치가 분명 존재한다. 나와 함께 지내는 식물들이 알려주는 따스함과 진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자주 보고 지나치는 팬지꽃의 꽃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생각해 주세요.”라고 한다. 꽃말을 알고 나니 이제는 길가의 팬지가 그저 흔한 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2024년 3월 30일
내일은 오늘보다 맑은 날이기를 기대하며.
진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