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도 역시나, 선생님께서 꺼내시는 다기를 보며 와아-감탄이 절로 나왔다. 앞서 보았던 동양의 다기들은 수수하고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었다면, 유럽의 홍차 다기들은 말그대로 화려함의 극치였다. 주전자와 잔마다 그려진 꽃잎과 화려한 그림들에 감탄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찻잎을 넣는 인퓨저(차거름망) 마저도 작은 주전자, 하트모양이어서 모두들 눈을 떼질 못했다.
차의 기원지는 중국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가 카페 메뉴판에서 흔히 보는 루이보스, 블랙티, 얼그레이 같은 차들은 중국에서 시작된 차와는 조금 다르다. 우선, 유럽의 홍차와 동양의 녹차는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발효과정의 유무에서 차이가 가장 크게 나타난다. 발효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홍차는 붉은빛, 발효과정 없이 만들어지는 녹차는 노란빛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그 맛과 향은 물론이고 성분 또한 다르다. 차의 기원은 중국이었으나, 현재는 세계 차 생산량의 75%가 홍차의 형태로 유럽에서 소비되고 있다고 한다.
"발효 과정을 제외하고 홍차와 녹차의 차이가 뭘까요?"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밀크티! 우유를 타 마셔요." "설탕을 넣어요." 첫 날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던 때와는 다르게 여기저기서 대답이 나왔다. 그렇다. 주로 맑게 즐기는 녹차와 달리 홍차에는 우유, 설탕을 넣어마시거나 다양한 향을 가미하기도 한다. 시중에 우리가 카페에서 접하는 대부분의 차들이 향이 가미된 가향차라고 한다.
붉은 빛의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홍차는 크게 스트레이트티(straight tea)와 블렌디드티(blended tea)로 나뉜다. 스트레이트 티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바와 같이 단일 산지의 차로만 만든 티로 기문, 우바, 누와라엘리아 처럼 산지의 이름을 그대로 붙인 차다. 한번쯤 들어봤을 '다즐링' 또한 인도의 지명을 붙인 스트레이트티의 이름이다. 블렌디드는 산지별로 다양한 특색을 지닌 차들을 혼합하여 만든 차로 블랙퍼스트 티, 애프터눈 티, 로열브랜드, 러시안카라반 등이 있으며 시판되는 차의 대부분이 블렌디드차이다.
이날의 첫차는 잉글리시 블랙퍼스트였다. 카페인이 잔뜩 들어있어 이른 아침에 눈을 번쩍 뜨게 해준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이름에 걸맞게, 아주 강한 맛이 느껴진다. 보기에는 커피보다 여려보이지만 쓰고, 떫은 맛이 강렬하다. 커피에서 차로 넘어오면서 강한맛이 끌리는 사람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차였다. 차를 우리며선생님께서 새로운 다기용품을 소개해주셨다. 사진의 가운데에 나온 덮개는 차를 우릴 때 온도를 보존하기 위해 덮는 주전자 덮개로 티코지라고 부른다. 수를 놓아 장식한 티 코지는 그 용도와 생김새 모두 보는 이까지도 따뜻하게 만드는 힘을 지닌 것 같았다.
차를 담는 틴케이스 또한 다양하고 화려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두번째 차로는 쿠스미티 에서 나온 '아나스타샤'를 마셔보았다. 쿠스미티는 프랑스의 대표 차 브랜드로 찻잎과 과일향을 섞어 만든 인퓨젼 티가 유명하다. 틴케이스 패키지 또한 이쁘게 구성되어 선물용으로도 많이 선택하는 차라고 한다. 선생님께서 가져오신 여러 차의 향을 맡아보며 무슨 향일지 추측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나스타샤는 남성의 향, 무거운 향을 지닌 얼그레이를 가볍고 플로럴하게, 여성향으로 바꾼 차라고 한다. 영화 아나스타샤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녀의 이름을 딴 이 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떤 차든 차의 이름을 살펴보면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것이 참 재미있다. 차를 배우고 알아가는 재미 중에서는 그런 이야기의 힘이 강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정집 다도클럽 시즌1은 이번 회차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조명순 선생님과 함께 5주간 차를 마시며 차의 역사와 효능을 비롯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짧은 일화에서부터 삶의 지혜까지 많은 것들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특히, 내 삶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법, 내 몸과 마음을 위해 시간을 들이는 새로운 길을 알게된 점이 매우 뿌듯하고 감사하다. 또, 매주 맛있는 다식과 이야기를 함께 나눈 가정집 다도클럽 멤버들을 알게된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가정집은 다도클럽 시즌2를 계획중이다. 인스타그램 @w42_urn (가정집카페앤펍) 페이지에서 그 소식을 만나볼 수 있다. 좋은 기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차를 나누는 즐거움을 알게되길 바란다.
가정집 거꾸로 아카이빙 기록자로서 가정집 다도 클럽의 이야기를 글로 전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5주차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된 이후, 10월 26일에 진행되었습니다.
- 글에 소개된 차에 대한 설명은 다도 클럽에서의 수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을 알립니다. 자세한 설명은조명순 선생님의 저서 "마음으로 우리는 茶"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 가정집 다도 클럽은 인천 서구문화재단 문화다양성 사업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