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니. 이리도 거시적인 제목을 붙이는 대담함은 소설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목으로부터 품었던 기대는 ‘재희’의 결혼식에 간 ‘영’의 회상과 함께 고조된다. 이태원의 해밀턴 호텔 주차장에서 신원 미상의 남성과 열렬히 키스를 하던 ‘영’의 등짝을 ‘재희’가 내려치면서 둘의 우정은 시작된다. 헤테로 여성인 ‘재희’와 게이 남성인 ‘영’의 관계는 공교롭게도 찌질한 남자들에 의해서 단단해지고. ‘재희’가 지닌 여성으로서의 취약함을 ‘영’이 보완해주고, ‘영’의 퀴어로서의 취약함은 ‘재희’가 지켜준다. 결혼을 택함으로써 ‘영’은 ‘재희’와 묘한 거리감과 우정 너머의 사랑을 감각한다. 우리네 우정이 다 그렇듯이.
비단 친구에 대한 사랑 뿐 아니라, 용서할 수 없는 엄마를 향한 애증, 개똥철학을 가진 띠동갑 남성에 대한 연민과 성애, 그리고 대체불가능한 애인에 관한 애틋함까지, 한 사람이 대도시에서 겪는 사랑은 이토록 복합적이다. 주인공 ‘영’은 사랑의 경험을 뒷주머니에 품고, 대도시를 배회한다. 이태원을, 종로를, 대학로를, 올림픽 공원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뭐든 괜찮을 어딘가를.
주인공 ‘영’은 소설의 작가인 ‘박상영’을 연상시킨다. 이름은 물론, 소설 속 외모 묘사나 어느 정도 자전적 소설임을 인정하는 태도로부터 아리까리하고도 긴가민가한 독서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정말 작가의 일기장을 읽는 건가 싶을 정도.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몇 년 전 나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몇 장을 더 넘기면 아는 이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작가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내 얘기 같다”라는 것은, 사실 만인의 사랑에는 교집합이 있다는 얘기다.
작가는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일상언어와 농담을 사용해 독자를 쉴 새 없이 웃기고 울린다. 피식대며 한 챕터를 읽고 나면 마음이 공허해지는 것이, 꼭 이만치의 사랑을 겪은 것만 같다. 그렇게 한권의 소설집으로부터 굵직한 사랑을 서너 번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수한 대도시의 사랑 이야기에 몇 문장 얹고 싶은 마음으로, 소설의 마침표에 펜촉을 두고 주욱 선을 긋고 싶어지는 것이다.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93화
우주적으로 사랑하세요 “대도시의 사랑법” (feat.박상영)
작가는 퀴어 소설 속 인물들이 실제 퀴어 집단을 대표할까 염려했다고 한다. 퀴어 서사가 워낙 적거니와 소설 속 인물들이 비윤리적이고 방탕해 걱정이 많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캐릭터를 바꾸지 않았던 이유는, 다양성 때문이었다. 예술의 자장 안에서 퀴어 캐릭터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서였다고.
또한 ‘영’이란 인물로부터 자신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당사자성을 첨가했다고 한다. 스스로 진실과 창작의 경계를 오가는 독서를 즐길 뿐 아니라, ‘영’을 실재하는 인물로 상정한다면, 내 주변에도 퀴어가 있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경박함’이 매력인 소설이지만, 한바탕 웃은 뒤 마음이 내려 앉는 건, 오해를 무릅쓴 작가의 의도 덕이다.
소설집의 후일담을 듣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책을 펼치기 전, 작가의 사진과 함께 후일담을 먼저 듣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