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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무늬 Dec 23. 2019

너는 여기까지라고 당신이 그어둔 선

[픽션에세이] 내얘기듣고있나요

보고 싶다... 라고 적었다가 지우고는,

오늘 저녁이나 먹을까... 

부담스럽지 않은 문자로 바꿔 보낸다.


>


하긴... 

보고 싶다고 했어도, 아마 그녀는, 징그러운 농담 하지 말라며, 

그의 어깨를 툭툭 치고, 장난으로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도 왠지, 보고 싶단 진심을 말 할 순 없었다.


이미 들켜버린 진 오래됐지만,

아직도 그녀가 모른 척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당근 알레르기가 있는 그가,

오징어 볶음에 들어간 당근을 젓가락으로 쓱- 털어내는데,

그걸 보고 있던 그녀가, 재차 확인한다.

"정--말로, 당근 먹으면, 얼굴이 퉁퉁 부어?"


몇 번이나 그렇다고 말해 줬는데도,

"그 새 고쳐졌을 수도 있잖아. 따악- 한 번만 먹어봐라, 응?"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를 보며, 

그녀가 쯧쯧쯧.. 혀를 찬다.

"쯧쯧... 넌 다- 좋은데, 당근 못 먹는 거.. 그게 좀 하자야."


확 그냥, 이 자리에서 당근을 먹어 보일까...

그래서 눈코의 경계가 없어지는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주면,

그 때야 내 마음을 좀 알아줄까...


잠깐 헛된 생각을 해 보다가,

당근을 피해, 오징어와 양파만 쏙, 집어 먹는다.

여기서 당근을 먹는대도,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


저녁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왔다.


이대로 헤어지는 건 아쉽다고,

조금 더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하는 대신, 커피 한 잔 하고 가자고... 그렇게 말했다.


근처에, 그녀가 좋아할 만한 까페를 미리 알아두었다.

역시,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녀는, 딱 자기 취향이라며... 좋아한다.

묻지 않고, 그녀가 좋아하는 커피까지 주문했다.


그의 배려와 센스에 감동도 했겠다,

이렇게 늘 받기만 하는 게 미안하기도 하겠다,

그 마음을 모른 척 하자니, 어색하기도 하겠다.../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는지, 그녀는 칭찬을 시작한다.

"이거 봐.. 넌 진-짜 괜찮은 놈이야."


하지만 칭찬의 끝엔, 또 다시 농담처럼, 선을 긋는 말-/

"아후... 아깝다!! 니가 당근만 잘 먹었어도..."

말은 그렇게 해도,

그가 당근을 못 먹는 것이, 그녀에겐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그깟 당근이 이유가 아니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안다.

아마 그가 당근을 잘 먹는 사람이었다면.../ 그러면 그녀는 또...

그의 새끼손톱이 너무 못생겼다거나, 곱슬머리 남자는 별로라는 이유로,

지금과 똑같이, 선을 그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가까이 있고 싶어서, 오늘 밤에도... 

집에 데려다 줄까, 라는 말 대신에, 

조심해서 들어가.... 그 말만 하고, 먼저 돌아선다.


>


종이 위에 그은 선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던데...

넌 여기까지라고 당신이 그어놓은 선... 

언제쯤, 지워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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