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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Nov 25. 2021

책이 있어 산 것 같습니다

[오늘의 한 단락] 전영애의 '꿈꾸고 사랑했네...'

[편집자 주] '너는 너의 삶을 바꿔야 한다.' 릴케가 젊은 시절에 쓴 '고대 아폴론의 토르소'라는 시의 마지막 행이다. 그는 몸통만 남은 고대 아폴로의 석상을 보고서 그런 죽비 같은 깨달음의 순간을 맞는다. 아름다움에는 그런 힘이 있다. 보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것에 그친다면 또 하나의 위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그것을 닮고 싶게 만든다. 열망이다.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도 그러하다. 여주에 여백서원을 짓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빛을 선물하는 독문학자 전영애 선생도 그런 사람이다. 이미 값진 저서와 역서를 숱하게 냈지만 근작 에세이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에는 그만의 아름다운 삶의 궤적이 특히 명징하다. 책 제목은 거인 괴테가 말년에 자신의 삶을 요약한 시 구절이다.


여백서원. 책이 가득한데, 이름은 여백이라 지었습니다. 책도 읽지만 숨 한번 돌리며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을 담았는데, 실은 여백餘白이 아니라 여백如白입니다. 흰빛 같이 맑은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집인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왔을까요. 저는 워낙 산골 태생인데, 국민학교 5학년을 마치고부터 서울에서 혼자 살았습니다. 그때 제가 살던 곳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기차로 여섯 시간  정도였는데, 그때 제게 서울은 오늘날의 유럽보다 훨씬  멀었습니다. 어쩌면 달보다  거리였지요. 문화 충격도 없지 않았던 데다가 여러모로 감당할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입학한 중학교가 명문이라 좋은 가정의 딸들이 많다 보니, 글자 그대로  아이인 자신이 미운 오리 새끼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실에 앉아 있거나 학교  작은 서점에 들렀다가 초라한 하숙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집에서는 매달 하숙비 외에 용돈도 조금 왔는데, 저는  돈을  줄을 몰랐습니다. 언젠가 붕어빵을 구워 파는 수레에서 붕어빵을  봉지 사본 기억만 남아 있네요.


그때 마침 을유문화사와 정음사에서 세계문학전집을 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학교 앞 그 작은 서점에서 을유문화사 세계 문학전집을 샀습니다. 한 권에 200원 남짓했던 그 책들이 저의 첫 재산이었습니다. 까마득한 이야기인데도 풀빛 하드커버의 촉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알 듯 모를 듯한 책들을 그냥 읽었습니다. <제인 에어>나 <개선문>이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잘 읽히는 책도 읽긴 했지만, <모비딕>도 읽고, <신곡>도, <팡세>나 <파우스트>도 읽었습니다. 독서讀書가 아니고 그야말로 간서看書였을 것입니다. 그래도 릴케를 읽고 헤세를 읽었기에 나중에 대학교도 독문과로 갔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난생처음으로 독일어 원서인 휠덜린의 <휘페리온>을 샀는데, 그게 너무도 귀해서 내내 안고 다녔습니다. 읽기보다는 들고 다녀서 낡았지요. 한 번도 쉰 적이 없는 아르바이트 월급날이면 그때부터는, 충무로에 있던 나라에 하나뿐인 독일 책 전문 서점 '소피아'에 갔습니다.


3선 개헌, 즉 독재의 시작과 더불어 시작된 대학 시절에는 수업이 제대로 된 적이 거의 없어 졸업을 하려니, 정말이지 배운 것이 너무도 없어서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아무런 전망이 없었고, 산더미같이 밀려오는 사회적, 개인적 문제를 감당할 힘이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유학길에 올랐으나 새 책을 살 형편은 아니라 헌책을 있는 닥치는 대로 사고, 산더미같이 복사를 했습니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유학에서 돌아오니 상황은 더 나빠져서, 독일에서 겨우 제대로 시작된 공부를 이제는 막막하게 집에 혼자 쭈그리고 앉아 해야 했습니다. 볼 책은 자꾸 늘어나는데 책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렵사리 구한 책들은 식구들이 모두 잠든 한밤중에 일어나 읽었습니다.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집중해서 읽는다는 건 저에게는 늘 동시에 번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쓰던 타자기는 교정이 안 되어서, 책 한 권을 읽으면, 즉 번역하면 문장을 고치느라 다섯 번씩은 타이핑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주 손가락이 고장나곤 했습니다. 마무리가 되면 꼭 그것에 대한 글도 썼습니다. 예컨대 어려운 파울 첼란의 시는 전체를 다 번역했고 그다음에 쓴 글은 모여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파울 첼란의 시>가 되었습니다. 분단문학으로 주제가 옮겨갔을 때는 <나누어진 하늘> <민감한 길> <참 아름다운 날들> 등 동독에서 나온 책들이 모두 옮겨져 모두 서랍으로 들어갔고, 나중에 어쩌다 기회 있을 때면 책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틈 나는 대로 쓴 글은 모여 <독일의 현대문학: 분단과 통일의 성찰> 같은 책이 되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의 버릇은 평생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남의 나라 문학이 본업인지라, 읽은 것에 대한 글은 저절로 독일어로도 쓰이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독일에서도 저서가 제법 여러 권 나오게 되었습니다. 천천히, 번역까지 해가며 읽은 책 한 권 한 권과 더불어, 매번 하나의 세계가 열려 오곤 했습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끝에서 끝으로 내 두 발로 달려간 것도 같습니다. 나중에는 실제로 달려가기도 해 보았지요.


대학에서 가르치면서도, 가장 오래 한 수업은 '즐거운 책 읽기'를 표방하는 '독일 명작의 이해'라는 수업이었습니다. 출석도 시험도 교재도 없는 수업이었는데, 학생들이 책을 읽고, 함께 얘기하고, 학기말에는 교재를 자기가 만들어 제출해야 했습니다. 아마 어떤 수업보다 부담이 컸으련만 다들 참 열심히 했지요. 그들이 만든 창의력 넘치는 '교재' 중 가끔씩 선물받은 복사본만으로도 서원 한켠이 가득하고, 20~30년 전에 수업을 들은 사람들이 아직도 서원을 찾아옵니다. 함께 책을 읽던 추억은 사람들을 참 오래 묶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제 책 같은 건 없어도 살 듯한 세상이지만, 저는 책이 있어 산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달리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며 사는 사치까지 누렸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좋은 글을 찾아 읽게 되고, 그런 글을 쓴 큰 사람을, 시공과 무관하게 만나게 됩니다. 잠깐 차 한 잔을 나누어도 가까워지는데, 누군가가 온 힘을 쏟아, 때로는 인생을 다 받쳐 쓴 책 한 권을 읽는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같은 글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사람들은 또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모릅니다. 첼란의 시를 읽었다는 그 하나의 이유로 처음 본 저를 간곡하게 초청하던 루마니아 학자, <파우스트>를 읽고 번역했다는 이유만으로, 먼 극동에서 온 낯선 작은 여자에게 정중히 강연을 부탁하던 독일 괴테학회장, <서.동 시집>에 대한 강연을 듣고 200년 전에 나온 그 귀한 초판본을 선뜻 건네주던 독일인 부부, 중국이 처음 개방되었을 때 자금성 계단에서 마주쳐-이곳에 와보지도 않고 카프카가 그 계단에 대해서 썼던 글을 둘 다 알기에-말없이 서로 미소만 지었던 독일 카프카 연구가... 함께 책을 읽는 즐거움을 나눈 멀고 가까운 곳의 참 많은 얼굴들이 끝없이 눈앞에 지나갑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이야말로 내 삶의 천상적 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한 권, 한 권의 책으로 만나고 책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학교 연구실을 떠날 때 책 짐을 꾸리다 보니 가까스로 들리는 무거운 박스가 250개나 되었지요. 그 책들이 서원의 일부가 되었고, 이제는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읽고 있습니다. 퇴임 후에는 서원을 혼자 돌보느라 그전보다 일이 훨씬 더 많아지고 읽고 옮기고 쓸 책도 더 늘어나, 주경야독이 격심해졌습니다. 그래서도 가장 행복한 시간은, 서원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늦은 밤, 작은 등불을 들고 캄캄한 후원을 걸어 작은 단칸방 집의 불을 켤 때입니다.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인 것입니다. 노동하고, 읽고, 쓰고, 아마도 그게 마지막 날까지의 저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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