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기록자 황자양의 10문 10답
익숙한 동네를 구석구석 들여다보고, 기억을 기록하고, 이야기를 엮어 지극히 사적인 지도를 만드는 사람. ‘함께 만드는 지도 매일 동네 기록하기' 프로젝트 매니저 황자양 씨를 만났습니다.
10문 10답을 통해 동네 기록의 매력과 기록에 재미를 더하는 법에 대해 알아보세요.
Q. 간단한 인사와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도시와 관련된 일을 하는 황자양입니다.
(도시 기획자, 도시 보행자, 도시 기록자라고 지칭하는데요. 세 개의 타이틀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도시 기획자는 도시와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이가 사용할 수 있는 이름인 것 같아요. 도시 보행자는 스스로 붙인 타이틀이에요. 평소 차를 타고 이동하기보다는 걸어다니는 걸 선호하거든요.
도시 기록자는 도시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바라보면서 살피고, 기록하고, 현상을 분석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예를 들어 을지로 공구 상가가 사라지고 있는데, 이를 기록하고 이 방향이 무슨 의미인가, 옳은 방향인가 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은 제가 도시 기록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이죠. 이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Q.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의 사례처럼 잊혀질 기억들을 보관하는 것, 또 지금 우리가 사는 도시를 기록하는 것 두 가지 중에 어떤 쪽을 선호하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주목하는 것은 장소에 기반한 개인의 사적 기억과 경험이에요. 어쩌면 후자에 가까울 수 있지만 이것은 언젠가는 잊혀질 기억이고 지금의 도시가 가진 기억을 보관하는 일일 수도 있죠.
Q. 도시 기록자가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지도를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때 사회과 부도 책을 끼고 살았고, 가상의 도시를 만들어 그려보기도 했죠. 그래서 지도 회사를 다니기도 했어요.(웃음). 4년 정도 일했는데 남을 위한 지도만 만들다 보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도시 기록의 하나로 사적인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망원동에 살았는데요. 망원역 2번 출구에서 망원 시장 입구까지 자주 드나들던 가게들을 제 경험을 더해 지도로 만들었죠. 축척에 따라 지리 상에 정보를 표현하는 일반 지도와는 달라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아는 지도만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리적인 정보를 담는 지도도 있고,
개인의 삶을 담는 지도도 있는 거죠.
이런 이야기들이 지도로 쌓이면
그 지역을 대표하는
콘텐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Q. 자양님에게 ‘동네’란 무엇인지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예전에는 옷 편하게 입고 도보 10분 내로 친구와 맥주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곳이 동네라고 생각했어요. 서울로 올라온 뒤로는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니까 동네 친구라는 게 없어지더라고요. 이제는 ‘나의 추억이 있고, 내가 좋아하는 곳’이 동네라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회사 주변이 될 수도, 거주하고 있는 곳이 될 수도 있고요.
Q. 동네 기록 프로젝트를 개설하게 된 계기와 프로젝트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하는 욕구를 어느 정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기나 글로 꾸준히 기록하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죠. 추억이 깃든 곳이나 좋아하는 장소를 소개하고, 그곳에 얽힌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건 누구나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매일 기록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 70명 가까이 신청해주셔서 놀랐죠. 사람이 많아서 다양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겠구나 기대도 했고요. 처음보다 인증률은 하락했지만 20명 정도는 꾸준히 매일 기록하고 계세요.
Q. 인상적인 멤버들의 인증글이 있다면?
참여하는 멤버 중 한 분은 인증글에 종종 친구들이 등장해요. 동네 친구들과 그 장소에 가서 추억을 나누며 기록하는데요.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닌 함께 나누는 공통의 이야기라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사는 동네를 매일 그림으로 기록하시는 분도 있어요. 이런 분들을 보면 늘 감동하고 깜짝 깜짝 놀랍니다.
Q. ‘함께 만드는 지도 매일 동네 기록하기’ 프로젝트는 동네에 관한 아카이빙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멤버들은 각자의 공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공유하기 어려운 내용도 많을 것 같아요. 함께 하면서 얻는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살고 있는 지역은 다르지만 간간히 겹치는 어떤 장소가 등장하기도 해요. 그때는 반가움의 댓글들이 달리죠. 재미있는 점은 모두가 아는 같은 장소도 각자 다른 감정과 기억을 갖고 있다는 점이에요. 개인적으로 저는 멤버들의 이런 기록을 통해 종종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누군가에게는 삶의 공간에서 이게 중요하고, 또 어떤 장소에서는 이런 마음이 생겼고 하는 것들이요. 마음이나 중요했던 순간은 다들 비슷하니까 이걸 공유하면서 공감하게 되고 하는 거 같아요.
Q. 도시 기록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개인의 사적인 기억과 경험입니다. 지리적 특징이나 동네 분위기도 결국 그곳에 사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인 기억과 경험에 더해 공통의 시공간적, 지리적 배경이 포함되면 더 좋겠죠.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제안하는 ‘우리 동네를 더 재밌게 관찰하는 방법’은?)
주요 건물이나 시설을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어요.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표정, 장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학교를 마치고 귀가하는 학생들의 모습, 외지에서 온 사람들의 모습 같은 것들이요.
익숙한 우리 동네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죠. 그러다보면 동네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 어느 길을 많이 이용하는지, 주로 가는 가게는 어디인지 등을 알 수 있게 돼요. 동네에 거주하는 몇몇 분들을 인터뷰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더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Q. 새로운 도시나 동네를 갈 때 자양님만의 어떤 습관이나 버릇 같은 게 있을까요?
저는 도시 보행자니까,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아보는 편이에요. 카카오맵 어플을 이용하는데 버스 정류장이나 출구를 확인하기 위해서 로드맵 같은 기능으로 미리 사진을 보기도 해요. 가보기 전에 사진에 찍혀 있던 것들, 가령 출구 밖 화분 위에 아직도 꽃이 피어 있는지 등을 상상하곤 합니다.
Q. 마지막으로 프로젝트 멤버분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먼저 멤버들의 사진과 글을 통해 제가 많이 위로받고 있다는 점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100일간의 결과물을 제작하려고 합니다. 온라인 모임을 통해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니 여러분의 기록이 어떻게 표현될지 마음껏 상상하고 기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화된 사회두기로 생활 반경이 좁아진 요즘, 우리 동네를 기록하며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는건 어떨까요?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가게, 놀이터, 주민들까지. 보이지 않던 공간과 이야기에 시선이 머물면서 익숙하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우리 동네가 ‘기분 좋은 낯섦’으로 다가올 거예요.
지극히 사적인 지도를 채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함께 만드는 지도 매일 동네 기록하기' 프로젝트에 방문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