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내 글에서 사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나의 의도가 상대방의 기분을 망칠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내가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먼저 그 부분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맞다고 쓴 적이 있다. 나는 그저 작은 조약돌 하나 던졌을 뿐인데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내었다면 내가 아무리 결백하다 하더라도 그에게 미안하다고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이들에겐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이 말은 맞는 것 같다. 하지만 단서를 붙이자면, 내가 여전히 상대방을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있으며, 그가 여전히 내게 중요한 사람이고, 앞으로도 조금은 중요한 사람일 수 있으며 그게 아니라도 내가 여전히 내가 보기에 나은 사람이길 바란다면 먼저 사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쓰겠다.
사과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한다는 점에 아프고 그만큼 용기가 필요하다. 아무도 스스로 아파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과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대방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마음, 한 사람의 나약한 인간으로서 연민의 마음이 없다면 할 수 없다고 믿는다. 나를 낮추고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내 잘못을 합리화하거나 지나친 죄책감을 느끼라는 말이 아니다. 사과는 진심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마음이다. 상대방을 나와 같은 소중한 존재로 존중한다는 뜻이다.(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사과는 상대과의 관계가 아직 중요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미 관계가 끝나서 그것까지 기대하지 않더라도 사과는 진정 한 걸음 더 나아가려는 의지이다. 누구에게 내보이려는 의지가 아니라 내 안에서 나를 이해하고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라고 본다. 그래서 사과는 용기 있고 마음이 큰 사람만 하는 것이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은 사과도 할 수 없다. 자신을 들여다볼 줄 모르는 사람도 진정한 사과를 하기는 어렵다.
사과를 했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의 용서를 꼭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공을 상대방에게 굴렸지만 다시 내게로 온다. 상대방은 아직 마음의 응어리가 녹지 않아 나의 공을 튕겨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하다면 나는 여러 번 사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번 굴린 돌이 상대방을 움직일 수 없다면 여러 번 두드리는 것이 맞다. 그래도 안된다면 포기해야겠지만 진심 어린 사과는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기 마련이다. 나의 사과는 나와 상대방. 우리 모두를 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용서란 무엇인가.
'내가 너를 용서해 주겠다. 듣고 보니 너에겐 그만한 이유가 있었네' 하면서 한번 상대를 눈감아주는 것이 용서가 아니다. 너는 어리석으니 현명한 내가 양보하겠다. 이것도 용서가 아니다. 너는 형편이 어려우니 너의 미약함을 내가 참아주겠다. 이것도 상대를 진정 용서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기란 '앞으로 주는 것(giving forward)라고 한다. 용서는 뒤돌아보아 과거에 집착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면서 다 내어주는 것이 용서라고 한다. 지나간 것을 보면서 뒤돌아보고 앙갚음을 하려고 하는 것은 복수라면, 앞을 보며 내어주는 것이 용서라고 한다.
진정한 용서는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나를 용서한다는 것은 나 자신을 앞으로 내어주어 늘 지금 여기에 현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용서란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일에 대해 의미 부여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가 지금 여기에 나 자신을 던져 넣는 것이 용서이다. 삶이라는 넓은 대지위에서 나를 얽매이는 것들을 놓아버리고 스스로 자유롭게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용서이다. 용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을 줄이는 것과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용서를 할 때 비로소 온전한 수용도 할 수 있다. 지금 이대로,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의 마음에서 연민의 마음이 생긴다. (유색처리 부분은 내면소통, 김주환에서 참조)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은 사람은 대게 타인과도 사이가 좋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나를 싫어하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은 대게 타인을 미워하고 타인에게 쉽게 부정적인 감정의 상태가 된다. 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부분 자기 자신도 용서하지 못한다. 내가 나를 용서하는 것은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부족함, 어리석음, 부도덕함 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스스로 용서가 가능하다. 내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나를 용서하기 어렵다. 자기 용서는 자기 존중으로 이어지고 더 이상 자기 비난이나 자기혐오로 빠지지 않게 도와준다. (유색처리 부분은 내면소통, 김주환에서 참조)
결국 타인을 용서하는 마음은 나를 용서하는 마음이 먼저 필요하고, 나를 용서하는 마음을 위해서는 나를 조용히 돌아보며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이 자꾸 과거나 미래를 향해 가면서 누군가를 미워하려는 마음에 온통 내 마음을 써버린다면 나의 마음은 독으로 물이 들것이다.
결국 용서란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용서는 미숙하고 불완전한 나와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인정한다는 뜻이며 우리가 함께 나아지려고 애쓰는 동안 그 상태로 괜찮다는 뜻이다. 인간이라는 이름표를 단 이상 이 지구상에 누구도 완벽한 이는 없다는 뜻이며, 모두가 각자의 생을 사느라고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의미이며, 나 역시도 매일 노력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좀 더 나를 아끼고 달래가면서 살고자 애쓰는 용기이며 이것이 나를 용서하고 그 용서의 힘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참고문헌: 내면소통. 김주환,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