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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치 Apr 22. 2020

나는 결국 두 번째 퇴사를 외쳤다.

후회는 해도 후회는 하질 않길 바라며

이직을 한 지 1년 만이다. 퇴사를 선언한 것은.

어느 쪽으로 결정해도 덜 후회할 것을 선택하기로 결정했고, 그 답의 결과는 퇴사였을 뿐이다.


나는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 이후로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쭉 지금까지 일만 해왔다. 생계를 위해서든, 나의 커리어를 위해서든 목표는 분명했고 그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으며 돈을 벌었다. 아마 12년을 일만 한 것 같다. 몸은 안 좋을 대로 안 좋아졌고, 화는 쌓여만 갔다. 이렇게 지속되었다간 내가 골로 갈 수 있겠구나를 생각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다.


여기에 다른 부수적인 이유들은 당연히 없지 않다.  

일을 떠밀기 바쁘고, 일하는 티는 내야 하니까 피드백은 줘야 하는 선임, 팀원을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한 리더, 매일 똑같이 루틴 하면서도 창의력은 발휘해야 하는 업무, 일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하는 것 같으면서도 안 하는 것 같은 인사팀 등 질릴 대로 질려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혀 그렇지도 않다. 그냥 내가 그만두면 끝나는 일이었다. 늘 생각하지만 한 회사를 10년 이상 다니는 어른들이 대단하게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즘 애들이 빨리 그만둔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애들이 빨리 그만두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더 팍팍해졌단 뜻이 아닐까 싶다. 다 같이 으쌰 으쌰 하는 건 없어지고 개인의 이득만을 위해 남을 짓밟거나 시기 질투하는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마음의 병을 얻는 것이 아닐까?


내가 퇴사하기 며칠 전, 퇴사하는 친구가 책상에 붙여놓고 사용할 수 있는 달력을 주고 갔다. "이 달력을 모두 넘기기 전에 이 곳을 벗어나 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랄게"라는 친구의 말을 들었을 때 이미 내 마음이 꿀-렁 한 번 움직였을지도 모르겠다. 큰 회사보다는 자기와 적성에 맞는 일을 찾아 떠난 친구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멋있어 보였다.


이런 꿀-렁 했던 마음을 갖고 나는 두 번째 퇴사를 외침과 동시에 마무리해야 할 일을 일사천리로 끝냈다. 속이 후련했다. 발목을 잡는 것들을 모두 뿌리치고 났던 그때의 통쾌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소소한 기쁨이었다. 나의 빈자리를 톡톡히 느끼길 바랬다. 뼈저리게 후회하길 바랬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은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길 바랬을지도.


막상 퇴사를 하고 쉬려고 하니 괜히 불안함이 밀려왔다. 코로나 때문에 경기가 침체돼서 채용을 홀딩하는 상황에서 내가 이직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불안감 말이다. 하지만 나는 뭐든 잘할 것 같다. 어디에 내놔도 걱정되지 않는다라는 사람들의 지지와 조언을 받을 때마다 '그래, 나는 이런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되뇌게 된다. 나는 비록 퇴사를 외쳤을지라도, 이 비루한 몸뚱이 하나로 굴리는 아이디어를 누군가는 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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