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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치 Jul 22. 2022

오피스 살인사건

1

타닥타닥 거리는 키보드 소리만이 사무실의 공기를 감싸고 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다. 그녀가 긴 휴가를 냈다는 것 외에는. 탕비실 내에서는 '갑자기 웬 휴가야?', '이렇게 바쁜 데 가는 게 어딨어'라며  수근 거리는 소리가 들리곤 하는데, 사람들은 그녀가 휴가를 낸 진짜 이유를 알리 없다.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할 테니까.



과거

아침 7시, 7시 20분, 7시 40분, 8시. 20분을 간격 삼아 알람이 울린다. 그때마다 눈을 떠서 알람을 끄고 있는 나 자신을 보자니 기가 차고, 알람이 울렸을 때 일어나면 될 것을, 5분, 10분이라도 더 자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우습다. SNS, 웹상에서 돌아다니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그린 내용들은 마치 나를 있는 그대로 투영한 것 같은 느낌.


출근하는 지하철은 만석이라서 앉지도 못한 채로 40분 내내 서 있다가 회사에 도착하니 화가 끓기 시작했다. 앉아있지도 못했는데 오자마자 업무를 시작해야 하다니. 옆자리 가은이 다가와 말을 건다. "혹시, 룸 좀 비세요?" 그녀가 매일 아침마다 끊임없이 내 방이 비었는지 연신 노크를 해대는 탓에 노이로제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다. 이제는 룸에 'ㄹ'자만 봐도 토 나올 것처럼. 아, 사람들은 이걸 번아웃이라고 하던가?  


현재 나는 10년 차 글 쓰는 사람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고, 회사 밖에선 닉네임으로 투잡을 뛰고 있는 생을 살음으로써 생각보다 꽤 잘 나간다. 그러나 회사 안에서는 업무 특성상 생각할 시간은커녕 와다다다 면을 뽑아내는 국수 기계처럼 생각 없는 글 쓰기를 하는 시간이 허다할 뿐이다. 이럴 때면 머릿속은 텅텅 비어 가는 것 같고 그 안이 화로 잠식되는 것 같아 주체할 수 없다. 마케터인 그녀가 보기엔 내 글은 하나같이 형편없는 글인가 보다. 내 글을 보면서 옆에서 한숨을 푹푹 쉬면서 뜯어고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지가 뭔데 고치지'라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면서 바뀐 글을 다시금 확인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이것도 글이라고 쓴 건지. 본인이 맞다고 여겨지는 저 생각들을 하나같이 뇌를 열어서 구조를 싹 다 갈아엎다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했다.


퇴근 후의 일상은 똑같다. 다시 만석인 지하철을 서 있는 상태로 타고 와서 현관문을 열기 무섭게 소파로 직행한다. 어느새 생긴지도 모르지만 내 몸 깊숙이 스며든 피부 각질처럼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는 소파를 더 무겁게 짓이길 뿐이다. 그대로 잠이 들기도 부지기수. 그렇게 잠들고 한참 동안 꿈을 꾸다 깬다. 꿈에서 깬 아침은 늘 괴롭다. 감정 이상의 감정들이 나를 지배해, 꿈에서 나는 내가 아니었다. 상상 그 이상의 천국을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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