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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치 Jul 03. 2018

자존감이 뭐라고

자존감을 잃은 지 오래인 듯싶다.


유독 그런 날이 있다. 자존감이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날. 그런 날에는 혼자 머리 속에서 이미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낸다.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고, 회사에서는 나 혼자만 뒤쳐지는 것 같고, 이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것만 같다는 등 미친 듯이 끝도 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근데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듯싶다. 연애를 하고 있지 않으면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 대로, '왜 나는 연애를 못하는 걸까?' 자책하기에 이르는 사람도 여럿이다. 이럴 때 읽으면 좋다는 <자존감 수업>을 읽어 봤지만 도무지 소용이 없었다. 전혀 실천하지 않을 것만 같은 자존감을 기르는 법만 나열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왜, 그런 사람들 있잖아. 남의 말은 귀띔으로도 안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결국엔 하는 사람들. 아 '답정너'. 내가 그런 부류였다. 결국엔 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면서 책을 왜 읽는지. 아마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해도 괜찮아.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라는 식의 위로들. 그러나 책에서 찾으려고 해도 책도 방법만 제시할 뿐, 지금 당장 고치지 않아도 괜찮다고는 하지 않는다.


요즘 SNS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람의 자존감을 낮춘다는 것이다. 이런 나는 SNS에 하루의 일과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SNS에는 그 사람의 가장 좋은 면만을 보여준다. 호화로우면서도 여유롭고, 늘 행복한 일상만을 공유한다. 그걸 보고 있자면, 당연히 지금의 내 삶과 비교해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다. 돈에 쫓겨 여행은 뒷전에다가 여행 좀 갈라고 하면 바빠서 어디 가지도 못하고 야근을 하면서 사무실 속에 처박혀 있는 나의 삶과는 너무 비교되기 때문이다. 사치스러운 면만을 보여주는 이들을 동경하게 되고, 팔로우하고 추종하게 되는 경우까지 이르자 인플루언서라는 직업도 생기고 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SNS를 하는 사람들의 자존감을 갉아먹기도 한다. 그래도 난 뭐 꾸준히 하고 있다. (철저히 내 위주로, 내 사진만 본다.)


사랑에 있어서도 자존감은 항상 문제다. '그따위 자존감이 뭐라고?'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존감이 낮아지는 일에 항상 상처를 받곤 한다. 상처는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는 병이 된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다. 대학교 시절, 잘생기기로 유명했던 N군과 연애를 할 때였다. 자기 자신이 잘생긴 걸 알았던 그는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없었다. 항상 나의 스케줄을 자기 자신과 맞추길 바랬으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는 묵묵부답을 시전 하기 일쑤였다. 그런 그와의 연애에서 물컵에 가득 차 있던 것 같던 내 자존감은 반 정도 쏟아졌다. 그래서 그 연애에 종지부를 찍었다. 내 자존감이 밑바닥을 보일까 봐. 근데 이미 반 정도 쏟아진 자존감은 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비교당하는 말에 울고 상처받는다. 그래 놓고 자존심은 어찌나 쌔었는지. 하여튼 답이 없다. 그놈의 자존감이 뭐라고 이렇게 내 마음의 병을 키워놓는 건지. 자존감이든 자존심이든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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