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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Oct 12. 2024

밥그릇 1

엄마에겐 딸, 딸에겐 엄마






아, 우리 딸? 벌써 서울 갔지. 그러게, 어찌어찌 지내나 보다. 통통하이 태어나가 뽈뽈거리면서 기 댕기던 기 엊그제 같은데, 하이고오, 벌써 커가지고 서울에 산다. 잘 못 오지. 지 딴에는 자주 온다고 해도 어디 내한테 그게 자주겠나.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오는 것 같다. 아니, 내 닮아서 전화도 잘 안 한다이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우리는 그래 생각한다. 아빠는 섭서배하지. 그래도 우짤 끼고. 아가 벌써 그런 성정으로 컸는데.


아니, 가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내가 아주 후회를 하는 일이 하나 안 있었나. 이번에 어버이날이라고 그 근처에 부산을 왔다 갔거든, 가가. 와가지고 내랑 이것저것 하다가 다이소를 갔다이가. 뭐, 지도 내도 살 게 있어서 같이 걸어갔지. 아니, 근데, 지가 산다던 거랑 아무 상관없는 그릇 코너에 가서 한참을 서 있다이가. 아, 바빠 죽겄는데, 그래서 뭐 하노, 하고 물었지. 근데 가가 뭐라는 줄 아나.


_ 엄마, 밥그릇 좀 바까라. 너무 오래 썼다이가. 지겹지도 않나. 비싸지도 않은데, 여기 와서 몇 개 골라 보라매, 내가 사주께.


아니, 이란다이가. 아, 내가 마음이 이상하더라. 짠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아, 그래, 후회한 일이 뭐냐면, 내가 가한테 이래 말을 했다. 아니, 먹고사는 게 지겹지, 밥그릇이 머시 지겹노. 그래도 가가 막 웃더만 밥그릇을 몇 개 골라서 샀긴 샀다. 이게 왜 후회가 되냐고.


가 말마따나 밥그릇이 비싼 것도 아니제. 싼 거라고 해도 새 그릇에 예쁜 그릇에 밥 담아 무면 기분도 새롭고 얼마나 좋노. 하루가 즐거워지는 게 뭐, 대단히 어렵나. 그런 거 하나두 개 바까 놓고 기분 전환하고 그러는 거지. 그러면 하루도 사뿐사뿐할 것 같다 아이가. 진짜 그르트라. 가가 가고 나서 그 밥그릇에 밥 담아 묵는데 한 맛 더 나더라. 그래, 내가 가한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었네 싶다. 사는 게 지겨워도, 지겹지 않고 소중히 살아야 하고 그기 어려운 기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 반대를 말해뿠다이가. 그게 내가 너무 후회스럽다.


아, 그래서 내가 돈을 만 원 보냈다. 보내면서 니도 다이소 가서 그릇 몇 개 사라 했다. 사고 인증사진 찍어 보내라 했다. 께을바즌 가쓰나가 갔는지 어쨌는지 샀는지 어쨌는지 감감무소식이다. 지 될 때 인증사진 보내겠지, 보낸다 했으니까. 밥맛이 더 맛있을 꺼라면서 좋아하더라. 지나 내나 또 이런 거에 즐거워하는 거도 닮았다 아이가. 아니, 인자 말해 뭐 하노. 말 안 해도 알겠지. 뭐 꼭 말해야 알아듣겠나. 마, 됐다. 내 딸이다. 내가 더 잘 안다.


어어, 내 내일 시장 갈라꼬. 니도 갈래? 모자 단디 쓰고 나온나. 내일 억쑤로 덥다 카더라. 서울은 33도라 카던데, 야는 어디서 익어뿐 거 아닌가 모르겠다. 어야, 알았다. 내일 보자.


_


엄마의 삶의, 가장 작은 매 순간들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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