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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Oct 15. 2024

서랍처럼

線에게







지하 차도로 들어가면서 생각했어, 닫히는 기분에 대해서. 막다른 곳을 향해 미끄러져야 하는 모양과 밀면 밀려야 하는 처지에 대해서. 새카맣게 어두워져야 한다는 사실과 썰물처럼 밀려왔다가 고여버린 시간, 돌아나갈 수 없어 종종거리는 여전한 나의 진심에 대해서.


線아, 시월의 반이 지나가고 있어. 잘 지내니. 밤낮의 기온이 가파르다. 외투를 잘 챙겨야 해.


계절을 넘으며 너를 생각했어. 시간에 억지로 금을 긋는 것 같아 계절이란 말이 밉다며, 다른 뜻의 계절繼絶도 있는데 왜 계절은 계절季節이어야 하냐며 뾰로통하던 너. 끊어진 것을 다시 잇는다는 그 계절繼絶을 나는 오늘에서야 찾아 읽었어. 어떻게든 이어 보려는 마음처럼, 복잡하게 생긴 글자.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며, 글자를 쓰던 이들의 손을 떠올렸어. 무엇을 그토록 잇고 싶었을까, 무엇이 그렇게 끊어져버렸던 걸까. 그러면 線아, 우리는 어떠니, 너는 나를 끊어버렸니. 결국 닫아버렸니. 나는 거기서 생각해, 닫히는 기분, 막다른 곳, 암흑과 뒷걸음질할 수 없는 내 진심에 대해.


아래를 향해 치닫던 버스가 고개를 쳐들며 오른쪽으로 기울어질 때, 구원처럼 빛이 쏟아졌어. 버스는 마치 기다리고 섰는 듯한 가등들을 향해 뛰어 달렸어. 열리고 이어지면 언젠가는 빛이 비치는 거겠지. 끊어지지 않아서, 잇기만 잇는다면 다시 환해지는 거겠지.


닫힌 서랍의 안쪽, 더는 계절繼絶하지 않는 우리를 생각했어. 저녁처럼 저물어 가는 우리를 꺼낼 방법이 정작 우리에게는 없구나. 몇 번을 돌고 돌았을 뿐, 우리의 계절은 이렇게 사라지는 거겠지. 끊어진 것을 잇는 계절繼絶은 사라지고 마디를 지어 끝을 맺는 계절季節이 우리에게 시작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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