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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sualising Korea Sep 14. 2019

조국 딸 이슈의 본질

한국 정치, 사회 엘리트들의 특권에 대한 무지

비주얼라이징코리아 프로젝트를 시작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김치 기사에서 얘기했듯이 영어권 미디어가 한국을 다루는 단조로운 방식을 넘어서 보다 풍부한 한국 묘사를 제공하고 싶었던게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또다른 이유 중 하나는 현대 사회 이슈에 대해 탄탄한 통계 자료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확한 분석을 내고 싶은 것도 있었다.


하지만 데이터를 구하기 어려운 이슈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아쉬운 이슈들인데 이런 경우에는 사회과학 이론에 기반해서 질적 자료를 분석한다. 비주얼라이징코리아의 코멘터리 섹션이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비주얼라이징코리아(https://visualisingkorea.com)의 코멘터리 섹션


최근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에 대해 많은 의혹이 제기되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비판을 제기하는 의혹은 조국의 딸이 의학전문대학원을 진학하는데 조국의 영향력이 작용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조국은 딸의 의전원 진학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밝혔으며 딸의 성과가 정당하다는 증거들을 페이스북에 포스팅했다.


조국 페이스북 포스팅 중 하나


물론 의혹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부정 입학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과정이 법망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비판하는 부분은 과정이 불법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조국과 조국의 딸이 가진 특권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인지하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국의 딸은 부산대 의전원에 합격하고 고려대학교 커뮤니티에 합격 수기를 남겼다. 그런데 합격 수기를 보면 면접, 자기소개서, 외부활동 등 모든 과정에서 본인이 잘했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었던 거라고 믿는 것 같다. 반면에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고, 경제적 능력과 인맥까지 있는 사회적 유력 인사의 자녀로써 누릴 수 있는 특권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과연 합격 수기에 쓴 것처럼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면 누구든 의전원에 합격할 수 있는걸까?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이론을 빌려보고자 한다. 


과연 조국의 딸이 합격 수기에 쓴 것처럼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면
누구든 의전원에 합격할 수 있는걸까?


부르디외(Bourdieu)는 인생의 대부분을 권력, 특히 세대에 걸쳐 재생산되는 권력을 연구하는데 바쳤다. 사회적, 문화적, 상징적 자본을 발견하고 이 자본이 어떻게 불평등을 재생산하는가를 밝힘으로써 사회과학 연구에 굉장한 기여를 했다. 이번 기사에서는 특히 문화적 자본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문화적 자본을 발견하고, 문화 자본이 어떻게 불평등을 세대에 걸쳐 재생산 하는가를 밝힌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자본이라고 하면 보통은 돈, 자산, 부동산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경제적 자본은 불평등을 만드는 한 측면일 뿐이다. 다른 측면 중 하나가 바로 문화적 자본이다.  


문화적 자본은 사회적으로 획득한 자산이다. 예를들어 행동 양식, 말하는 방식이나 억양, 암묵적인 지식 등 오랜 시간에 걸쳐 배우고 익숙해진 것들을 말한다. 보통 가족, 친구와의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어려서부터 경험한 모든 일들을 기반해 형성된다.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자본과 문화적 자본이 어떻게 다른지 예를 한번 들어보겠다. 


똑같은 신체조건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자전거로 산을 타야한다고 해보자. 그런데 한 사람의 자전거는 바퀴도 크고, 최신 장비들이 달려있는 반면에 다른 사람의 자전거는 바퀴도 작고 어떤 장비도 달려있지 않다. 과연 누가 먼저 산을 올라갈 수 있을까? 


자전거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첫번째 사람은 어려서부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다. 부모님이 자전거 교실에도 보내주고, 곳곳을 누비며 자전거를 타는 클럽에서도 활동했다. 산을 타본 경험도 여러 번이고 예전에도 많이 해봤으니까 자전거로 산을 타는데는 아주 자신있다. 심지어 어느길로 가야 제일 좋은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자전거를 최근에야 배웠다. 자전거로 산을 탈 수 있을지, 위험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 올라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하는지도 모른다.  


위의 예시에서 자전거는 흔히 얘기하는 자본에 해당한다. 반면에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능력, 어려서부터 주어진 여러 기회들 덕분에 배울 수 있었던 암묵적인 지식과 행동양식들은 모두 문화 자본에 해당한다. 문화적 자본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두번째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실제 우리 현실에서 문화적 자본은 학업에 대한 익숙함으로 볼 수 있다. 학업적으로 좀더 익숙하거나 능력있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말하는 방식이 면접에서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자산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어만해도 영국 악센트는 사투리 영어나 원어민이 아닌 사람의 영어보다 다른사람들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좀더 교양있고 능력있다고 인식하게 할 수 있다. 이런식으로 말하는 방식은 결과적으로 대학 입학이나 인턴 면접에서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문화적 자본은 자신감도 준다. 자신감이 있어야 이런 사회적 상황에서 다른사람들이 능력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수 있다. 


억양을 바꾸는건 매우 힘든 일이다. 시간도 오래걸리고 완전히 바꾸지 못할수도 있다. 문화적 자본을 획득하는건 바꾸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문화적 자본을 획득한다는 건 내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고방식에서부터 어려서부터 습득해온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문화적 자본은 태어난 순간부터 자연적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우리를 둘러싼 환경, 이를테면, 가족, 이웃, 친구, 학교, 여러 경험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문화적 자본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능력이나 재능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자연적으로 전해진 문화적 자본일수도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능력이나 재능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은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자연적으로 습득하게된
문화적 자본일 수 있다.


사실 문화적 자본은 어떤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형성된다. 노력보다는 태생 복권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어떤 문화적 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특정 국가에 사는 특정 가족에게 태어나 특정 사람들 주변에서 자라는 이런모든 확률이 맞아떨어져야 획득할 수 있는 것이 문화적 자본이다. 


조국은 고학력자이고 교수이다. 그런 사람의 딸이라면 자라면서 당연히 높은 문화적 자본을 갖출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며 문화적 소양을 넓혀나갈 기회도 많이 주어졌을 것이다. 이는 물론 대다수 많은 사람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조국 딸은 합격 수기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얘기한다면서 다양한 단체에서 자원봉사, 인턴 등의 활동을 4-500 시간을 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부 활동에 투자할 시간에 생계에 뛰어들어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또 면접에서는 창의성이 중요한 것 같다면서 당황스러운 질문에 대한 순간대처능력과 논리력을 보는 것 같다고 썼다. 조국의 딸이 면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것들이 암묵적 지식, 상류층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큰 노력 없이도 습득하게 되는 문화적 자본이다. 


조국의 딸은 합격수기에서 이런 모든 것들이 마치 개인이 노력해서 획득한 능력인 것처럼 적었다. 하지만 부르디외(Bourdieu)에 따르면 바로 이 문화적 자본 때문에 불평등이 더욱 심화된다.


물론 조국의 딸이 의전원을 입학하는데 어떤 노력도 들이지 않았다는건 아니다. 조국 딸의 인생도 쉽지는 않았을 것이고, 노력도 많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면접이나 자소서쓰기처럼 어려운 과정들을 헤쳐나가는데 남들보다 훨씬 더 알맞게 준비가 되있었다. 


앞에서 들었던 자전거의 예시를 따르자면, 조국의 딸은 자전거로 산을 올라갈 준비가 훨씬 잘되있었던 것인데, 준비를 잘 할 수 있었던건 단순히 개인 노력 때문이아니라 특정 가정에서 태어나 다른 사람에 비해 특권이 주어질 수 있는 행운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조국 딸이 가진 능력의 많은 부분은 특정 가정에서 태어날 여러 확률이 맞아 떨어지면서 획득하게 된 문화자본에 기반한다. 문화 자본은 태생적으로 운이 좋아 획득한 것일 뿐,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문화 자본은 태생적으로 운이 좋아 획득한 것일 뿐,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조국의 딸이 남긴 합격 수기는 이러한 특권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하다. 답답한 일이기는 하지만 사실 놀랍지는 않은데, 부르디외(Bourdieu)에 따르면 문화적 자본이 돈, 자산 등의 경제적인 자본보다 훨씬 가려지기가 쉽다.  백인 특권을 연구한 페기 맥킨토시(Peggy Mclntosh)에 따르면, 특권에 대한 사회학 이론에서도 특권을 가진 사람들은 특권을 인정하는 것을 꺼린다고 설명한다. 


요즘에는 인종이나 성별, 성적 정체성 등 눈에 보이는 성질들에 기반한 특권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회 계층에 기반한 특권은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인지되기도 어렵다. 그래서 몇몇 학자들은 특권을 인지하지 않는 것 자체가 “미세공격(microaggression)”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권을 인지하지 않음으로써 특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경험을 무력하게 만든다거나 특권이 없는 사람들이 경험하게 되는 장애물들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조국 딸의 합격 수기는 본인이 가진 특권에 무지하고 그런 의미에서 미세공격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조국을 포함해 조국 딸의 의전원 진학이 개인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고 얘기하는 것도 미세 공격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조국딸의 진학 의혹을 둘러싸고 화가 나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사실 화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조국 딸이 진학에 성공한 큰 부분이 특권에 기반한다는 것을 부정할 때마다 그 특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미세 공격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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