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어 Jun 13. 2020

내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 이유

내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원인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근본적인 이유는 게으름이지만 제일 큰 이유는 목표가 너무 높았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할때 항상 한발 내딛는 것이 어려운데 나는 항상 한발도 내딛기 전에 저멀리 앞서나가 목표를 이룬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고 나서는 이미 이룬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한발 내딛는 것이 부질 없어 보여서 내딛으려고 했던 한발을 뒷걸음치고 말았었다.



고3때 나의 목표는 서울대였다. 내가 공부를 특출나게 잘했던 것도 아니고 반에서 중간 정도를 유지하는 성적이었는데 서울 내에 있는 대학교도 아닌 그중 제일 탑인 서울대가 목표였던 것이다. 당연히 나는 서울대는 커녕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어디에도 원서를 넣지 못했다. 공부는 열심히 하였으나 줏대가 없어 전문대에 원서 하나를 넣게 되는데 그곳에 덜컥 붙어버려서 다른 학교에는 서류조차 못 넣는 상황이 되었다. 평소보다 수능성적이 잘 나왔는데 미련한 짓을 하고 말았다. 내 자신을 믿고 밀고 나갔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지만 여러군데 서류를 넣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리고 취업이 잘 될것 같아 선택했던 국제무역과라는 전공은 어려웠고 나와 맞지 않았다. 용돈 벌이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교에서 친해진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찌 저찌 맞지 않는 전공으로 졸업을 하고 보니 그쪽 길로 취직하는 것은 더더욱 맞지 않겠다고 판단하여서 디자인 학원을 다녀서 딱 밥벌이 할 수 있는 만큼의 디자인 툴을 익혔다. 어렸을 적 처음 꿈꿨던 나의 미래 모습은 화가였는데, 디자인을 하면 얼추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고 잘하지도 못하는 디자인에 흥미까지 없었다. 입에 풀칠을 해야 하니 억지로 회사를 이리 저리 옮기며 다녔다. 이리 저리 옮기는 바람에 경력 인정도 못 받아 높은 연봉은 꿈꾸지도 못했다. 그래도 꾸역 꾸역 디자인 회사를 전전했다.



중간에 편입에 도전을 했다. 그때 역시 나는 서울에 있는 유명한 미술대학을 목표로 삼았었다. 이번에는 목표를 조금 낮춰서 홍대 이런 곳 말고 서울 안에 있는 아무대학교에나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부던히도 열심히 했다. 내가 모은 돈으로 준비를 하니 빠듯했지만 악착같이 편입미술을 준비했다. 나는 이번에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수원에 있는 대학교에 붙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목표가 높았던 게지.



그렇게 열심히 준비했고 꿈꿔왔던 예술대 캠퍼스를 다니게 되었다. 그럼 나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림을 그렸어야 했는데. 미술대학교만 가면 다 예술가가 되는 줄 알았다. 야작을 하며 밤을 새우며 그림 그리는 내 모습에 취해 있었지만 실상은 그림 조금 그리다가 동생들과 술퍼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년 동안 나는 또 최선을 다하지 않았고 나는 회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에겐 예술적인 감성과 끈기가 없었다.



다시 원래 하던 일로 돌아왔다. 그저 그런 회사에 또 취직을 하고 2년쯤 다니고 쉬다가 또 이번에도 2년쯤 다니다가 구조조정으로 다시 백수가 되었다. 나이는 계속 많아지고 회사생활은 점점 맞지 않고 대책 없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나는 깨달았다. 목표가 높으니 나는 계속해서 그저그런 인생을 살고 있구나. 그래서 목표를 낮춰보기로 한다. 아니 목표를 갖지 않고 그저 한발자국 내딛기로 했다.



아직도 나는 꿈이 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하려고 하지 않겠다. 계획표를 짜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뭐라도 하려는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 이렇게 생각하니 편해졌다. 매일 뭐라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있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자기계발서보다는 어쩌다 보니 이루었다는 사람들의 에세이을 찾아서 읽고 있다. 내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지금도 그 일을 하면서 잘하고 있는지 이게 맞는지 10년 경력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어찌저찌 잘 풀리겠지 하는 무심한 마음으로 매일매일 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예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마음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매번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대단한 결심을 하고 매일 이만큼씩 해나가면 되겠지, 그리고 장비를 사고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시 그저 그런 회사로 돌아가고를 반복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러기 싫다. 하지만 이것도 대단히 결심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해볼 수 있을 만큼 하고 안되면 마는 거다.



진작에 알았다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뭐라도 이뤘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좋다. 길은 한 방향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갈래의 길이 있으니까. 나는 구비구비 돌아서 이제 깨우쳤지만 그동안의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그동안의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