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풀 공원편
내가 좋아하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주말엔 숲으로>를 따라 오늘은 숲으로 가보았다. 얼마 전 글쓰기 모임에서 ‘당신은 언제 심미안이 발현되나요?’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눴는데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대답이 나와서 재미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이 제각기 달랐는데, 누군가는 아름다운 사람의 얼굴을 볼 때, 누군가는 수학 기호들을 볼 때, 또 누군가는 상대방으로부터 높은 인격이 느껴질 때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대답했다.
특히 요새는 연두색 잎사귀들에 햇볕이 닿아 반짝이는 순간, 달콤한 아카시아 향이 느껴지는 순간, 무성한 나무 밑에서 포근한 바람을 느끼는 순간 자연에 감사함을 느낀다.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는 대혼란의 시기를 겪으면서, 자연에 더 많이 기대게 되는 것 같은 요즘이다.
오늘은 급 서리풀 공원을 다녀왔다. 출퇴근길에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서리풀’이라는 부드러운 이름을 보며, 참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가보게 되었다. 며칠 전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초입부터 풀 냄새가 가득했고, 흙먼지가 일지 않아 가볍게 ‘등산’하기에 정말 좋았다. 사실 오늘 나는 서리풀 ‘공원’을 가는 줄 알고, 치마에 구두 차림 그대로 갔는데 알고 보니 ‘산’이었다. 경사가 그렇게 가파르진 않았고, 코스가 엄청 긴 편은 아니어서 일반적인 등산보다는 가볍게 느껴지긴 했지만 말이다. 준비 없이 오른 산이었지만 산비둘기 우는 소리와 언젠가 멧돼지가 출몰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씩씩하게 산을 올라갔다.
산을 오르면서 우리는 한동안은 가지도 못할 여행 이야기와 세월을 실감하게 하는 옛날 드라마 이야기, 2002년 월드컵 이야기를 한참이나 나눴다. 예전에는 낯을 많이 가려서 친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이랑 있으면 얼음이 되곤 했었는데, 요새는 천천히 대화를 나누면서 관계가 점점 편안해지는 이 과정을 즐기게 되었다. 난 외향형 인간이었던 걸까.
서리풀 코스를 오르다 보면, 중간에 작은 계곡도 나오고, 작은 다리도 나온다. 그리고 색색의 장미가 심어져 있는 평화로운 몽마르뜨 언덕도 나온다. 이곳에선 통통한 토끼가 평화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다. 마치 여행 온 사람들처럼 우리는 몽마르뜨 언덕에서 사진을 찍고, 누에고치 동상의 입을 만지며 소원을 빌었다. 정해진 코스를 다 돌고 돌아오는 길에는 다들 말수가 사라졌다. 올라갈 때에는 중간 중간 내리막길이 많은 게 참 좋았는데, 다시 돌아갈 때에는 내리막길이 다시 오르막길이 되어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스크 사이로 선선한 산바람이 들어와 오늘은 서리풀 공원에 가기 딱 좋은 날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있으면 또 일상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찾아오게 될 텐데, 그 전에 서리풀 공원에 다녀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잠시나마 마음이 평온해졌다. 도심 속에 이런 숲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좀 더 숲을 누리며 살아야지.
모기떼들이 나타나기 전에, 날이 무더워지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한 번 더 가고 싶다. 다음에 갈 때에는 시원한 얼음 물과 가벼운 운동화를 챙겨야겠다.
근처에 숲이 있다면 ‘주말엔 숲으로’ 가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