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글쓰기 좋은 질문 642>를 활용한 글쓰기
<언젠가 증손자에게 물려줄 작은 물건 하나를 고르고 왜 그걸 골랐는지 아이에게 설명하는 편지쓰기>
언젠가 만나게 될 나의 증손자에게
안녕? 보고 싶지만 아직은 만나지 못한 나의 증손자에게(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너의 이름을 내가 임의로 짓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일단은 증손자라고 부르마). 내가 너에게 이 편지를 적는 이유는 특별한 선물을 주기 위해서란다. 다른 가족들을 건너뛰고 증손자인 너에게 이 물건을 선물하게 되다니. 뭔가 너와 비밀 친구가 된 듯 한 느낌도 들고 재미있구나. 그런데 네가 이 편지를 읽게 될 즈음이면 정말 많은 시간이 흐른 때겠지?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세상은 엄청 빠른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어. 내가 대학에 다니던 때에만 해도 이 세상에 처음으로 스마트 폰이라는 게 나왔었는데, 얼마 전부터는 인공지능이니, 자율주행 자동차니 하는 것들을 개발하기 시작했지. 세상은 해가 갈수록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앞으로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이 세상에 존재할 너에게 어떤 선물을 주는 게 의미 있을지 너무 고민이 되는구나. 너에게 줄 선물을 고르느라 몇날 며칠을 고민했는데, 과연 지금의 나에게 의미 있는 게 너에게도 의미가 있을지 염려가 되지만 선물 자체의 의미보다도 이 선물이 너의 증조 할머니인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내가 너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어차피 세상은 끊임없이 변해서 너에게 이 물건이 닿을 때 즈음이면 내가 가진 물건들의 가치가 어찌될지 나는 예측할 수가 없을 것 같거든.
나는 어릴 때부터 참 꿈이 많았단다. 학창시절에는 한참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내가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랐던 부모님의 반대로 사범대학에 들어가게 되었지.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서도, 카피라이터나 기자, 다큐멘터리 피디가 되고 싶어서 이래저래 많은 시간을 방황하며 보냈단다. 그러다가 긴 방황 끝에 결국 다시 교사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나에겐 방황의 유전자가 있는지, 교사가 되어서도 나는 교사의 삶 이외의 길에 자꾸 눈을 돌리곤 했었지. 아무리 길어도 63세까지밖에 할 수 없는 이 직업에 나의 삶을 모두 쏟고 싶지는 않았거든. 여기에 모든 걸 다 쏟게 되었을 때, 내 남은 인생이 적적해지는 건 원치 않았어. 그래서 나는 나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틈틈이 글쓰기를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어. 어린 시절에는 글쓰기 학원에 가기 싫어서 몰래 공원에 가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부터인가 글을 쓰면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엄청 열정 넘치고 부지런한 사람은 아니어서,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단다. 마음을 먹은 지는 몇 년 되었지만, 이제야 겨우 글쓰기를 시작한 거니깐 말이야. 지금도 게으름이 많아서 겨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내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보는 게 있어. 바로 친구가 독일에서 사다 준 LAMY 펜이야. 이게 바로 너에게 주고 싶은 나의 선물이란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 말했을 때, 나는 사실 내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사람들이 채근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단다. 마음이 해이해졌을 때, ‘잘 쓰고 있어?’라는 말을 들으면 좀 쓰지 않을까 했거든. 그래서 여기저기에 말하고 다녔는데,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 중에 하나가 먼 곳으로 여행가서 내가 좋아하는 라임 색의 펜을 사다준 거지.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을 기념해주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골라왔다는 거야.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내 꿈과 나를 생각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 뭉클한 일이었어. 그래서인지 나는 이 펜을 볼 때면 힘이 나. 나는 아직 이 펜을 한 번도 쓰지 못했어. 쓸 수가 없더라고. 아까워서. 아마 너에게 이 펜이 갈 때까지도 나는 이 펜을 안 쓸 것 같아. 새 펜을 고스란히 너에게 넘기는 거지. 이 펜을 쓰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 펜을 떠올리면서 수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할 거야. 그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 펜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이 너에게 전해지면 좋겠어.
사람들은 참 이야기를 좋아해. 나도 이야기가 좋고.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적으며 나이를 먹어 갈 거야. 그리고 언젠가 너를 만나게 되겠지. 네가 이 펜과 나의 이야기들을 물려받아, 그 뒤에 따뜻하고 행복한 이야기들을 많이 채워나갔으면 좋겠어. 그때까지 내가 이 펜을 잠시 지키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해 둘게.
그럼 이만. 만나보진 못했지만, 보고 싶은 나의 증손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