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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표 Nov 13. 2022

요가 매트 위에서의 알아차림


늘 밝게 먼저 인사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요가 선생님이 계시다. 선생님은 잠시 대화를 나누기만 해도 열정과 활력이 느껴지는 사람이다. 많은 수강생을 만나면 지칠 법도 한데 한결같이 친절한 선생님을 보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선생님께선 수업 시간에 고급 아사나(요가 자세)를 하나씩 알려주시곤 한다. 지난 시간엔 물구나무서기에 가까운 동작을 보여주시며 직접 해보라고 하셨다. 난 아직 팔 힘이 부족해 가볍게 시도하기도 어려운 동작. 힐끔힐끔 다른 분들을 곁눈질하며 매트 위에서 아등바등거리고 있었다. 역시나 잘 되지 않았고, 공연히 헛수고를 하고 있는 것 같아 하기 싫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어려운 동작을 시키는 건 스스로 부족함을 느끼고 노력해서 뚝딱 해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런 걸 왜 해야 하나 짜증이 날 수도 있고, 잘하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열등감을 느낄 수도 있겠죠. 그 마음들을 그냥 알아차려 보세요. 때론 잘 안되지만 조금 더 해보고 싶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게 경계를 넓혀보는 경험을 해보는 거예요. 그게 바로 변화의 시작입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전적인 과제를 만나면 그냥 포기하고 싶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뭔가를 더 해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걸 알아차린 순간 이미 변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갑자기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밀려왔다. 그날은 매트 위에서 애쓰는 나 자신을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수련을 마쳤다.



집에 가는 길, 예전에 다른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과거 내가 겪은 상처, 이를 봉합해 보려고 애쓰듯 살아온 시간을 천천히 들어주신 분이다. 어느 날 내게 넌 앞으로 더 훌륭한 삶을 살게 될 거라고 하셨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아 물었다.

"선생님. 전 잘 모르겠어요. 제가 겪은 힘든 경험이 오늘날의 결핍을 만든 거 아닌가요? 앞으로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근거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요?"


그러자 선생님은 애석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네 인생의 사건을 솔직히 대면한 순간부터 변화는 이미 시작된 거야.”


당시엔 선생님의 말씀이 완벽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보다 훌쩍 자란 나를 보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현실을 직시한 순간 계속 뭔가를 시도하게 됐다. 그게 반드시 성공을 낳은 건 아니었다. 다만 조금씩 가능성의 경계를 넓혔고, 드물지만 어떤 것들은 인생의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남기도 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성공이라고 하기엔 약소하며, 갓 뿌린 씨앗을 거둬들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훗날 더 울창하게 자랄 미래의 가능성까지 품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이 조금 더 소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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