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열병 1. 연봉이 얼마를 넘으면 행복은 정체될까

by 정남이


저는 연봉 때문에 창피해서 제 졸업식도 가지 않은 못난이였습니다.

졸업 마지막 학기에 지원한 다른 회사는 모두 탈락했고, 그토록 바라던 대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취업준비를 하던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원하던 대기업에 합격했습니다. 그 소식을 전하며 축하해 달라고 연락도 많이 왔습니다. 대기업 입사 소식이 당시에 성공 기준이었던 거죠. 제가 합격한 회사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지방기업이라 설명이 항상 뒤따랐습니다.


‘거기가 뭐 하는 회사야? 어디에 있는데? 힘들겠다.’


제가 원하던 건 주변 사람들의 인정이었는지 모릅니다.

취업은 가까스로 성공했지만, 뭔가 실패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졸업식도 불참하면서까지 저 스스로를 숨기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졸업식도 안 갈 만큼 저에게 연봉은 자존심 그 자체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 20년 공부한 성적표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연히 연봉은 고고익선. 영어점수처럼 높으면 높을수록 좋습니다. 저 또한 취업 당시에 연봉이 높은 대기업을 선호했으니까요.


맨 처음 몸 담았던 직장은 연고 없는 지방에 중견기업이었습니다.

취업 준비할 때는 어디든 입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왕이면 돈 많이 주는 곳으로요.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달랐습니다. 당시 계약연봉으로 3,600만 원 정도를 받고 입사했습니다. 네, 신입사원 연봉 치고는 작지 않았습니다.

전공에 맞는 직무이기도 해서 합격과 동시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엿한 직장인으로 월급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사람 몫을 해낸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첫 직장생활, 불만과 실패의 연속>

친구들, 부모님, 선후배 모두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정작 저에게는 진정한 축하가 아닌듯했습니다.

그렇게 원했던 직장이었지만, 불만의 연속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기숙사가 없는 점, 퇴근을 밤 8시 30분이 되어서야 칼퇴라는 점, 이런 상황에서도 직원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을 밥먹듯이 하는 임직원들까지. 하나 같이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이미 삐뚤어진 마음으로 근무를 하니 직장 동료들, 일에도 정을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건 안정된 직장을 기반으로 이직을 준비하는 거였습니다.

오로지 머릿속에는 대기업 이직 밖에 없었죠. 퇴근 후 근처 카페에 앉아 자격증 공부, 기업 분석, 자기소개서 작성 등 매일 2시간 이상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생활이라는 게 제 마음대로만 되지 않았습니다.

회식이나 단합대회, 출장 등 시간을 온전히 사용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직을 위한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지지부진하게 성과가 없이 반년이 흘렀고, 스치듯 지원한 회사에 서류 합격소식이 날아왔습니다. 인성, 적성검사, 1차, 2차 면접까지 물 흐르듯이 합격했죠.

3차 최종면접을 앞둔 시점에서 근본 없는 자신감이 어디서 생겼는지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제 의사를 일방적으로 회사에 통보하고, 1년을 채 못 채운 첫 직장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3차 최종면접은 탈락했습니다. 경영층 면접으로 질문도 2가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는 이 기업의 최종면접은 확인 절차이며, 경쟁률이 1.1 : 1 수준이라고 마음을 놓고 있었던 게 화근이었습니다.


파란만장한 대기업 생활을 꿈꾸며 한껏 부풀었지만, 한 순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당시 창문 없던 고시원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어둡고 습한 방에 혼자 있으니 왜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반 시체 같은 저를 일으켜 세운건 결국엔 대기업 합격 소식이 아니라 고독했던 밤들이었습니다. 좌절 속에 무기력한 제 모습은 밤마다 괴롭혔습니다.


‘이 생활이 계속되면,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당장 다음 달 내야 하는 고시원비를 낼 돈이 부족해서, 정말 죽도 밥도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취업준비생, 이른바 백수로 돌아갔습니다.




<행복의 기준은 ‘대기업 명함’>

직장인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 게 뭐라고 했죠? ‘연봉’입니다.

그만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게 간판 즉, ’ 명함‘이 있습니다. 대게 돈을 많이 주는 곳이 대기업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 시절 너무나도 원하고 바랬던 게 바로 제 이름 석자가 적힌 조그마한 종이였습니다.

운이 좋게도 퇴사 이후 6개월 만에 원하던 그렇게 바라던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뻤죠. 부모님께도 자랑스러운 자식이 된 거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건 덤이었습니다.


하지만 연봉은 올랐어도 이전 직장과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월급이 300이냐 350이냐 수준이었죠.

‘내가 원했던 건 주변의 인정과 부러움의 눈빛이 아니었을까?’

잠깐의 부러움에 으스대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대기업 뽕’에 취해 후배들에게 ‘너도 할 수 있어’라는 성공의 메신저처럼 굴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창피한 일입니다.

그렇게 원하던 대기업이었지만, 생각보다 단출한 연봉을 또 다른 대기업과 비교하기 바빴습니다. 문제는 연봉이 얼마든 비교하기 좋아하는 제 낮은 자존감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긴 인생을 통틀어서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가족, 건강, 여행, 친구, 취미생활 등 생애 주기에 따라 중요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이제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2030 세대들에게는 대기업 간판, 연봉이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처럼요.


‘돈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게 아닐까? 결국 돈을 많이 받으면 주변에서도 인정해 주고 자연스럽게 내 자존감이 올라가는 게 아니겠어?’


사회가 정해놓은 틀 안에서 정답을 찾아온 기간이 긴 2030에게는 당연한 결정입니다.

존중합니다. 단지 그게 전부는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길 바란다는 거죠.


그때는 제 자존감이 낮아서, 유독 열등감이 심한 사람이라서 그게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이를 경제학자 리터드 이스털린은 이게 지극히 인간적인 본성이라 말했습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그는 학계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1974년 발표한 ‘경제 성장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가?‘라는 논문에서 돈을 많이 번다고 꼭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반기를 든 최초의 경제학자입니다.

돈으로 행복을 일정 부분까지 끌어올리는 요소가 되지만, 그 이상으로 배가 부르면 돈이 더 많아져도 더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거죠.

’ 사회적 비교 (Social Comparison)‘ 개념을 적용해 ’ 소득은 상대적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 본인 연봉 절댓값‘ 보다 ’다른 사람 대비 상대적 연봉‘ 에 더 신경 씁니다. 내 연봉이 1억이라도 옆자리 동료가 2억을 받으면 행복감이 상쇄된다는 거죠. 그러니 의미 없는 비교를 멈추고 본인 만의 행복 기준을 세우는 게 필요합니다.


제 졸업식에 가지 못한 이유도, 대기업에 가서도 행복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내 삶을 산 게 아니라, 남의 시선 속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후배님들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단순한 ’ 연봉‘과 ’ 대기업 명함‘은 오래도록 지속되는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요. ‘비교’라는 감옥에 갇혀 인생의 빛나는 졸업식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실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날 졸업실 사진 속에 환하게 웃고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