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처음이 기억에 제일 남듯, 저 또한 첫 승진이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
그렇게 힘들게 입사한 회사에서 몇 년이 흘러 연말에 첫 승진을 했습니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죠. 일한 만큼 성과에 대해 인정받아 뿌듯했습니다. 주변 동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도 혼자 잘나서 진급을 했다는 허튼 생각 따윈 하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섭리를 어느 정도 알고 나니, 큰 조직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겸손이란 걸 탑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죠.
몇 개월이 지났을까요? 달라진 건 ‘월급’과 ‘호칭’ 뿐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회사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고 생각했는데 실상 바뀐 건 별로 없었습니다. 처음의 느낌과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통장에 찍힌 월급 앞자리가 바뀌었을 때의 기쁨? 딱 3개월 갔습니다. 카드값 빠져나가니 잔고는 비슷했으니 말이죠. ‘대리’라는 호칭도 금세 헌 옷처럼 익숙해졌습니다.
이건 ‘과장’으로 두 번째 승진을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쌓일수록 진급에 목을 맨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연차가 높은 상사들과 이야기할 때면, 회사는 진급을 위해 다닌다고 이야기할 정도이죠.
처음에는 과하다고 느꼈습니다. 회사생활을 돈벌이 또는 자기만족의 영역으로 다니면 된다고 생각한 거죠.
승진의 약발이 떨어지자, 마치 금단증상을 겪는 사람처럼 변했습니다. 인정 욕구를 맛보기 위해, 스스로 러닝머신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회사는 ‘밥벌이 수단’이 아니라 ‘ 내 존재의 증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살이 찌고 문제가 되듯, 욕심도 더욱 욕망할수록 여러 부문에서 부정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러닝머신>
승진을 하고 바뀐 가장 큰 부분은 회사에 대한 마음가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회사에 의존도 하는 게 커졌습니다. 내 인생의 최우선이 회사가 된 겁니다. 회사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고, 윗사람의 요구에 맞춰 성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야근과 집에서 업무 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죠.
첫 승진 이후 회사 일에 대해 더욱 열성적으로 임했습니다. 지금의 나의 값어치를 인정해 주었으니 말이죠. 연차는 낮았지만 주도적으로 일할 요소를 찾았습니다. 내가 윗사람인 과장이라면, 팀장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어떤 방식으로 일할지 고민하고 제 분야의 경력을 쌓아갔습니다. 장점이라고 하면 회사에 있을 때는 일 속에 파묻혀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겁니다. 나름 몰입의 시간을 갖는 거죠. 이렇게만 본다면 일에 대한 전문성과 내 가치를 높이는 시간이므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회사 생활에 젖어 들어간다는 점입니다. 절대 회사에서 쏟는 시간이 부적절하다거나 아깝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회사라는 곳에 속함으로써 생기는 장점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죠. 그건 추후에 제가 생각하는 장단점을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시 돌아가 모든 생활이 회사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 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라는 곳은 ‘경쟁’ 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 옆의 동료보다 잘해야’ 합니다. 욕망하면 할수록 살이 찐다고 말한 것처럼, 순수한 일에 대한 열정으로 대하기보다는 불순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죠.
제 마음의 소리와 행동은 점점 변했습니다.
‘저 팀원 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지?’ 자연스레 동료들과 비교하고, ’ 팀장한테 인정받기 위해서 이걸 해볼까?‘ 상사에게 잘 보이려 일을 한다거나 말이죠.
동료들의 비교를 선의의 경쟁으로, 상사에 대한 부분은 처세나 사회생활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직장인들이 처절하게 임하고 있으니까요.
<기쁨의 유통기한>
동료보다 잘하고, 팀장에게 인정받으면 잠시 짜릿했지만, 그 느낌은 승진 때보다 더 짧았습니다. 비교를 통해 얻는 능력을 우월감이나 타인에게 결정 바통을 넘긴 인정은 유통기한이 짧았습니다.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을 마시는 꼴이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의 러닝머신(Hedonic Treadmill)’이라고 부릅니다. 더 빨리 달릴수록, 욕망의 속도도 같이 빨라지지만 결국 제자리인 거죠.
쉽게 말해 '새 차 효과'와 비슷합니다. 무리해서 좋은 차를 뽑았을 때의 그 황홀함, 얼마나 지속되던가요? 비닐을 뜯고 새 차 냄새가 빠지는 순간, 그저 '이동 수단'이 되어버리죠.
승진도, 연봉 인상도 똑같습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더 큰 자극이 오지 않으면 뇌는 금방 지루함을 느끼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승진이 주는 기쁨이 사라진다고 해서 자책하지 마세요. 그저 뇌가 적응했을 뿐이니까요.
저 또한 문득 두려웠습니다.
‘회사라는 배경을 지우고, ‘과장’이라는 직함을 떼고 나면 나에게 무엇이 남을까?’
회사에서 받는 인정은 달콤했지만, 조직에 쓸모 있을 때만 유통기한이 정해진 ‘조건부 행복’이었습니다. 내 자존감의 스위치를 왜 남의 손에 쥐어주고 있는지 말이죠.
승진은 기쁜 일 일이지만, 그것이 행복의 종착역은 아니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조기 승진도 했다면, 그건 마땅히 축하받고 기뻐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 기쁨의 유통기한이 짧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기쁨이 사라진 자리에 찾아오는 공허함에 잡아 먹히지 않을 테니까요.
회사 안에서의 성취도 중요하지만, 회사 밖에서도 나의 자존감 올리고 웃게 만드는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본인도 모르게 러닝머신 위에서 숨을 헐떡이는 게 아니라요. 필요할 때 올라타고 원할 때 내려올 수 있게 말이죠.
회사의 직함은 사무실 책상 위에 두고 나오세요. 회사가 준 명함이 없어도 당신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괜찮은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짧은 퇴근길 잠깐이지만 온전히 느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승진의 기쁨이 사라진 자리를 ‘불안한 경쟁’으로 채우지 말고, 본인만의 단단한 일상으로 채워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