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들을 위한 가장 완벽한 생존 전략
연말의 회사에는 두 종류의 임원만 남습니다.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연말이 지나 임원을 포함한 여러 동료들이 짐을 싸서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매년 12월이면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풍경이란 걸 깨닫습니다.
유명 개그프로그램에서 나온 유행어 같이, 밑에서는 치고 올라오고, 위에서는 떠밀려 결국 집으로 떠납니다.
임원 한 명이 마지막 인사를 위해 직원들 자리를 돌며 씁쓸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건넸습니다.
‘졸업이니깐 축하해 줘’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생각했습니다.
’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부와 명예가 따라오지만, 그 끝은 철저한 성과주의뿐이구나 ‘
내가 아니라는 생각에 체감은 덜 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내 자리가 동아줄처럼 튼튼해 보일지언정,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썩은 동아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냉탕과 온탕사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있는 회사에 일정 수준 이상 만족스렀다면 일단 버티십시오.
물론 억지로 다니라는 말은 아니니 끝까지 들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보통의 직장인은 3년 차, 6년 차, 9년 차 때 이직과 퇴사의 욕구가 솟구쳐 오릅니다.
제 각각의 이유를 핑계로 말이죠. 저에게도 회사를 10년 넘는 기간 동안 숱한 고비들이 있었습니다.
냉탕과 온통 사이를 오가듯, 하루에도 몇 번씩 퇴사와 잔류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습니다.
3년에서 6년 차 까지는, 이직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퇴근 후, 주말 할 것 없이 카페나 도서관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자격증 공부에 매달렸으니까요. 여기저기 신입이나 경력으로 지원도 했습니다.
’ 내 능력만 키우면 언제든 떠날 수 있어 ‘라는 근본 있는 자신감이 나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직할 곳을 알아보지 않고 퇴사하려고 보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창문 없는 고시원 백수 시절, 지독했던 ’ 월급 없는 삶‘의 무서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간 회사를 다니면서 월급의 노예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달 계좌에 찍히는 월급이 어느 정도 삶의 안정감을 주었고, 이직에 대한 열정에 대한 의지를 매년 꺾어 놓았습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스스로를 합리화하면서 그냥저냥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변에 이직에 성공하는 회사 동기들을 보고는 어찌나 마음이 움직였는지 모릅니다.
부럼움 반, 시기 반. 똑같이 출발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제 자신이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인생의 성적표가 있다면 낙제점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어 우울했습니다. 직장 선배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분이 이야기한 한 문장이 그간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됐습니다.
‘난 이해가 잘 안돼. 이직하는 사람들만 대단한 게 아니라, 여기서 버티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대단한 거 아닌가?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존중받아야 하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가 더 멋있는데 말이지’
맞습니다.
이미 제 마음속에는 다른 회사로의 이직이 ‘정답’, ’ 사표를 던지고 나가는 사람은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습니다.
정답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은 틀린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존감을 낮추느라 분주했습니다. 익숙한 환경에서 나가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었던 겁니다.
이걸 ‘자기 계발의 함정’이라고 표현합니다.
이직이나 자격증 취득 등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상태 변화 만이 성장이라고 착각하는 거죠.
현재 한 곳에서 깊이를 더하고, 난관을 겪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눈에 띄지 않지만 ‘축적의 시간’입니다.
‘이직’이라는 선택지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지, 반드시 ‘실력의 성장’으로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SNS에 올라오는 타인의 이직과 화려한 성공스토리는 인생의 하이라이트 같은 순간이지만,
그걸 쫓아서 변화에만 목메는 것은 저처럼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길입니다.
<가늘고 길게 vs 굵고 짧게>
주변 3040 세대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대체로 본인의 야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임원? 됐어. 그냥 적당히 진급하다가, 몸은 편한 곳에서 정년까지 근무하고 싶어”라고 말할 뿐입니다.
‘가늘고 길게’ 가는 실속파 같지만, ‘책임은 지기 싫고 돈은 벌고 싶다’는 회피의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비겁하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요?
임원이 되기 위한 길이 순탄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동료들과 경쟁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줄여가며 업무와 상사의 요구를 맞춰야 합니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도 견뎌내야 하죠.
여기 까지만 본다면 일에 욕심이 있고 비전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전할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렇게 노력한다고 해도 임원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회사 생활의 목숨 줄을 타인의 손에 쥐여주는 것.
그렇게 회사생활에 올인했다가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면 본인의 인생에 남는 건 별로 없습니다. 불안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죠.
회사라는 불확실한 도박판에 내 인생 전부를 걸기에는 인생에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까요?
‘안티프래질’ 책의 저자이자 금융 철학자인 나심 탈레브의 이렇게 말합니다.
‘90%의 극단적 안정’과 ‘10%의 극단적 위험’을 말하며 어중간함을 버리는 바벨전략이 필요하다고요.
헬스장을 가본 사람이라면 바벨이 생김새를 한번쯤 봤을 겁니다. 바의 양 끝단에 추를 달아서 균형을 맞춰 들어 올리는 운동기구죠.
중간을 비우고 양 끝단의 자산을 배분하여 균형을 맞추는 게 가장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입니다.
핵심은 이겁니다.
리스크는 최소화하고, 확장 여력은 무한대로 열어 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자산 배분 관점에서 90%는 예금이나 채권을 보유하고, 10%는 아주 위험 자산을 보유하는 거죠.
그러면 위기가 닥쳤을 때, 손실의 위험은 최대 10% 수준에 그칩니다. 반대로 위험 자산이 폭발적으로 상승한다면 큰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인 겁니다.
나심 탈레브는 모든 재산을 중간 정도의 리스크를 갖는 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은 전 재산을 날릴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 전략을 일상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회사에서 있는 시간만큼은 역량이 닿는 곳까지 열심히 하고, 회사 밖에 나와서는 작은 도전을 계속하면 됩니다.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안정감속에서 본인의 상승 잠재력을 최대한 확보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회사 승진에 목을 매기보다는 업무 능력과 성과를 보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대체 불가능한 실무자가 되는 거죠.
상사 비위를 맞추는 에너지를 아껴서, 업무의 전문성을 키웁니다. 시간을 투자한 만큼 내 회사생활을 지켜주는 강력한 방패역할을 할 것입니다.
더불어 퇴근 후에는 회사 일을 깨끗이 잊고 오로지 나만의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사이드 프로젝트인 거죠.
저처럼 글쓰기도 좋고, 온라인 커머스, 유튜브 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중요한 건 회사 밖 나만의 무기를 갈고닦아서 ’ 폭발적인 성장‘을 노리는 겁니다.
설령 실패한다고 해도 그간의 잃는 건 10%에 지나지 않습니다. 메인 잡은 회사에 있기 때문에 단기 성과보다 꾸준히 쌓아나가면 되는 겁니다.
저는 위험을 회피하고 싶은 겁쟁이입니다. 그래서 이 양극단의 바벨을 들기로 결정했습니다.
낮에는 가장 보수적인 회사원으로 일하며 내 삶을 지키고, 고요한 새벽과 밤에는 야심 찬 ’ 생산자‘가 되어 도전하는 중입니다.
이것이 제가 찾은 회사에 기대지 않고 제 인생을 사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