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인생의 안전장치를 탄탄히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흔히 착각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통장에 찍힌 숫자가 늘어나면 행복도 정비례할 거라는 믿음, 그리고 비싼 물건을 사면 내 가치도 올라갈 거라는 착각입니다.
제 유년 시절 이야기를 잠깐 해보겠습니다.
시골 어촌, 허름한 단층 주택. 천장에는 쥐 가족이 밤마다 운동회를 열었고,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쥐보다 더 싫었던 건 집 밖에 덩그러니 놓인 ‘푸세식 화장실’이었습니다.
90년 대지만 저희 집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죠. 특히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는 날이면 죄인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친구들이 화장실을 다녀온 뒤 묘하게 표정이 굳어지는 걸 느꼈으니까요.
지독한 악취를 잡기 위해 주렁주렁 매달어 두었던 나프탈렌의 진한냄새가 싫었습니다. 형형색색의 나프탈렌 특유의 머리 아픈 냄새가 제 옷에도 배어 있어 늘 위축되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그 모습 자체가 가난의 모습이자 향기였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이 지독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땀의 가치 vs 소비의 허무함>
결핍은 소유욕을 낳았습니다.
가난한 유년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후부터는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택배 상하차, 아파트 일용직 같은 몸 쓰는 것부터 레스토랑 서빙, 웨이터, 편의점 알바, 과외 등 돈 되는 것은 다했습니다.
택배 상하차로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서 번 10만 원. 편의점에서 진상 손님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번 시급 4천 원.
돈은 숫자가 아니라 '제 시간과 자존심을 갈아 넣은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계산기가 머릿속에서 돌아갔습니다.
"이 20만 원짜리 신발이, 꼬박 3일 밤을 새워 상하차를 한 고통보다 더 큰 기쁨을 줄까?"
대답은 늘 '아니요'였습니다.
물건을 샀을 때의 짜릿함은 찰나였지만, 그것을 벌기 위해 흘린 땀의 기억은 오래갔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가난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비싼 향수나 명품을 휘두르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쉽게 질리고 사라지는 '소유' 대신, 내 안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무언가'를 찾기로 말이죠.
<불어나는 기억의 복리>
‘경험’에 쓴 돈은 달랐습니다.
한계효용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소비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추억’ 일 겁니다. 어릴 적 500원짜리 학교 앞 떡뽂이가 맛있었다고 기억하지 않나요? 그건 ‘유일’하고 ’ 처음‘이라는 경험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입니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제가 선택한 ’ 경험‘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휴학을 택해 건설 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유복하지 않아 해외 유학은 가지 못하지만, 돈을 벌어 뜻깊은 경험을 해보고자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6개월 정도를 매일 일하다시피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돈에 한이 맺힌 사람처럼 악착같이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그해 겨울 동유럽 여행을 떠났습니다.
30일간 이어진 여행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됐습니다. 남들이 보면 미친 짓이라 했을 겁니다.
10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그 어떤 경험들보다 진하게 제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독일 어느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호쾌하다고 느꼈고, 영국사람들은 너무나 맛없는 음식을 먹는데 행복해 보였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냥 키가 컸습니다.
10개의 나라를 돌면서 있는 힘껏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했습니다. 그 나라의 일부분을 보고 듣고 느낀 거지만, 제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각자 삶의 방식과 태도가 다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외국인들과 대화할 때의 자신감도 그때 생겼습니다. 그때 소비한 돈은 전혀 아깝지 않았고, 그전에 일한 6개월의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행복의 감가상각>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흔들린 적도 많습니다.
월급이 들어올 때마다 보상심리가 발동해 마음속에서는 구매 욕구가 용솟음쳤습니다. 다른 물건에는 욕심이 없었지만, 저 멀리 미국 땅에서 만든 아이폰이 너무나 갖고 싶었습니다. 학생의 지갑 사정으로는 쉽게 살 수 없었지만, 직장인에게는 달랐죠.
진짜 원하는 소비라서 거리낌 없이 매년 휴대폰을 교체했습니다. 신형 아이폰으로 바꾸면 처음에는 애지중지하며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가치는 한 달 이상 가기는 어렵고, 3개월만 지나도 새 휴대폰이라는 체감 따윈 없어졌습니다. 그토록 사고 싶어 했던 워너비 기기가 주는 행복과 만족감은 한 달이라는 시한부였습니다.
회사원이 되었지만 과거와 비슷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회사원이 되면 몸은 상대적으로 편하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루를 무사히 넘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반복되는 하루가 계속될수록 소비에 집착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나에 대한 보상이 필요했으니까요.
퇴근길에 의미 없이 휴대폰 쇼핑몰 어플을 켰습니다. 그리고는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렸습니다. 스트레스를 줄이고 멘탈을 관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는 변명과 함께 말이죠. 지금은 왜 샀는지도 모르는 물건들이 제방에 먼지만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때 다시 깨달았습니다.
‘소유로 얻는 행복은 유통기한이 너무나 짧구나’
<진정한 행복을 위한 제언>
인간은 적응의 동물입니다.
천국 같은 환경도 3개월이면 ‘당연한 일상’이 되어 버립니다.
푸세식 화장실이 싫어 그토록 꿈꿨던 양변기 위에서도 이제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니 소비의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사라질 물건을 사서 3개월 남짓의 기쁨을 얻는 대신에, 사라지지 않을 경험을 사서 평생 가슴에 안고 추억하는 게 낫습니다.
꼭 거창한 해외여행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낯선 곳을 걷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눈을 맞추세요. 퇴근길에 쇼핑 앱을 끄고,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가세요.
너와 나, 그리고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 마음을 주고받다 보면 자연스레 위로를 받고 행복감이 올라갈 겁니다. 소중한 건 지금 주변에 있는 가족, 친구, 연인들과 함께하는 순간들입니다.
결핍 속에서 자란 제가 얻은 결론은 한 가지입니다.
나를 진정으로 채우는 건 명품 가방 따위가 아니라, 내 몸에 새겨진 땀 냄새와 같은 값진 경험이라는 것을요.
그것만이 유일하네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는 온전한 ‘나의 것’ 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