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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Jun 27. 2022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밀종 버섯이 자라는 시간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모든 이의 삶은 언제나 조금씩은 불행하다.

나 역시 그러하다.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 불행 속을 거닐다가 용케 탈출한다. 

한강 다리 난간에 차올랐다가 빠지는 물처럼

흔들리는 수초(水草)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냄새나는 옷을 벗어던지면 새 날개가 돋는다.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는 언제나  

얼마간의 불행 속에서 행복이란 걸 만져보는 시간

아름다운 거짓말이 필요 없는 넉살스러운 공간이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섞이고, 

냉장고에 붙여 놓은 

어린 손자의 필사본 <꽃>에 웃음이 터진다.  

내가 써놓은 낙서가 조금 허전하다고 

'부탁이다'를 덧붙였단다 

어린 손자의 꿈은 아직 푸르고 투명하다. 

비 개인 순간 구름 사이로 비치는 새파란 하늘처럼, 

일직선으로 나르는 새들의 깃털을 셀 수 있을 만큼,  

손자의 원대한 꿈은 

아빠처럼 해병대 병장 계급장을 달고 

애달픈 국토의 막내 독도를 지킴으로써 

나라를 지키는 거다. 

독도를 마음 놓고 웃게 만들겠다는 

세상에 둘도 없는 꿈을 가진 내 손자는 

공부는 딸려도 기죽지 않는다. 친구가 많은 덕분에,

개그맨처럼 잘 웃겨주고, 브롤을 잘하고, 

달리기도 빠르고 축구를 잘해서 다른 반을 제치는 

참 좋은 능력자

그러나 지 에미는 애가 탄다. 

커서 뭘 해 먹고 살아갈지 몰라서,

딸이 애를 태울 때마다 

'너보다 낫다'라고 죽비를 든다 

이 밀종 버섯이 쑥쑥 대지를 밀어 올리고 솟아나듯 

세상은 알고 보면 공평하다 

아는 사람은 안다.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게 인생이라는 걸 

그래서 역사가 유지된다는 것을,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는 언제나  

얼마간의 불행 속에서 행복이란 걸 만져보는 시간,

아름다운 거짓말이 필요 없는 넉살스러운 공간 

손자 덕분에 기운이 더 난다.

행복한 시간은 새벽 5시 5분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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