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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길숙 Oct 17. 2024

가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

- 뜻밖의 선물,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가 보내는 엽서

이른 새벽 e- 메일 상자를 여는 일도 마음 설레고 참 재미있다. 상자를 여는 순간, 내가 미처 접하지 못한 소식들과 알아야 할 지식과 정보, 삶의 지혜가 와르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요즘 눈길과 마음이 닿은 곳이 국립중앙박물관 큐레이터가 보내는 엽서다. 오늘 새벽에는 대숲과 조우했다. 취우(驟雨), 비가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기라도 한 걸까. 길이 맑다.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


대숲길에 성큼 발을 들여 놓았다. 차마 눈뜨고는 못 볼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시대를 건너다 만난 길, 가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길. 마음에서 좋은 생각만 끌어올려 삼은 짚신 신고, 한걸음 두 걸음 세 걸음...천 걸음 만 걸음.. 오늘은 이 길 따라 세상을 만날 수 있어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 같다.


이 호쾌한 대숲길에 사족처럼 몇 글자 내 맘 담았다. 요즘 사진이나 그림 위에 글자를 얹는 것에 재미 붙여 오늘 아침에도 그냥 적어 봤다. 딴-짓이 주는 해방감이랄까.. 오늘은 내가 참 좋다.


죽(竹)지 않고 끝내 이기리


대나무가 종일토록

올 곧게 서서 상상한다

하늘 끝까지 내 팔이 솟아오르면

땅 속 깊이 내 발이 뿌리내려 퍼지면

혹시 내 손톱에 바람이 다치지 않을까

혹시 내 발톱에 아직 싹트지 않은

어린 씨앗들 놀라지 않을까


그래서 서둘지 않고

손가락 한 마디만큼만 티나지 않게 컸다.

이 길 걸으며 우리 반짝반짝 빛나라고

이 길 걸으며 우리 두근두근 설레라고


운명이 내어준 대숲 길 오래오래 걸으며

죽(竹)지 않고 끝내 이기리라는 다짐

대나무 마디마디 올리듯 야물딱진 약속

내게 하는 오늘의 맹세


- 박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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