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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페이스댕 Oct 13. 2024

연봉 올리기

그냥 사는 이야기


한국에서는 한 직장에 오래 일하는 게 미덕이었다.

오래 한 곳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끈기를 보여주는 것이고,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것의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지식의 창고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고 이력서를 준비하면, 너무 짧게 있었던 곳의 이력은 빼버릴까 고민하고, 그러다가 공백이 생기면 그 이유가 건설적인 것이 되도록 스토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나는 80년대 90년대 한국의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새로운 신입사원을 몇 천명씩 뽑을 수 있었던 시대에 기업이 가지고 있던 직원들의 미덕을 자연스럽게 배우면 성장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직장에서 오래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연차가 쌓이고, 매년 물가상승분만큼의 연봉은 오르며, 직장에서의 위치는 올라갔다. 그런 개인적인 믿음이 처음으로 깨어지기 시작한 것은 IMP당시 디자인실내 선배와 후배가 자신들의 능력이나 충성도와 상관없이 잘려나가면서부터였다.


가족 같은 회사라더니, 가족을 쫓아내?


특히나 내가 일하던 직군은 국내에서도 세, 네 개 회사에만 있었고 - 지금은 2개 남았다고 봐야 하나?-  그렇지 않으면 해외의 기업으로 취직을 해야 했었다. 아무튼 나도 언젠가는 버림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80년대의 찬란하던 가족 같은 기업문화는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일하던, 결혼식날 오전까지 일하다가 결혼식장으로 달려가던  직원들을 내치다니. 밤 10시에 퇴근하면 너무 일찍 퇴근해서 뭐 하며 놀지 몰라하던 시절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일할 수 있는 기업의 수를 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회사를 많이 세울 수는 없으니, 내 직종에 변화를 주어 어떤 가족 같은 회사가 식구를 내치더라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게 IT라고 생각했고 IT에서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당시 자동차기업은 완전 제조산업이었지만 자동차도 IT산업으로 바뀔 것이었기 때문에 언젠가 자동차로 돌아오리라 생각하며 '친정'을 떠났다.


몇 년이 지나, 나는 독일의 한 기업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

문화의 충격이었다. 단지 언어가 바뀌는 게 다가 아니었다. 내가 익숙해하던 7시-22시 문화는 당연히 없었고 9시에 출근했던 직원들은 오후 3시만 되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후 5시, 사무실에서 고개를 들어보니 정적이 흐르고 있었고, 홀로 남은 나를 발견했다.

그랬다. 이들에게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었다. 가족, 맥주, 댄스, 스쿼시가 더 중요한 것이었고, 그것을 위해 최대한 빈틈없이 하루의 일을 마무리하고 달려 나간 것이다. 내가 일을 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회사로 달려와 그 일안의 빈틈에서 관계를 찾고 휴식을 찾던 것과는 반대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일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느냐, 과거에 무슨 일을 했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늘 사무실에서 얼마나 오래 남아 있었는지, 중간에 어디 가서 커피를 마시고 왔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또 과거에 어느 회사에서 몇 년간 일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간에 일하지 않고 몇 년을 쉬었느냐, 다른 일을 했느냐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결과물이 어떤 것이냐가 중요했다.


한국인들은 어떤 사람의 실력을 판단할 때, 그의 일만을 두고 판단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그의 성격을 통해 일하는 태도를 짐작하고, 그가 일했던 회사의 수준을 통해 전문성을 짐작하고, 일한 기간과 최종 직급을 통해 지식과 능력을 짐작하는 경향이 컸다. 많은 회사들이 지금도 그럴 것이다.


한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냐는 그 사람의 끈기와 지식의 수준, 사람들과의 관계 등 많은 것을 얘기하는 기준이 되고 그래서 그 한 회사 안에서 인정받아 승진하고 연봉을 올리는 일을 해 놓아야 한다. 보통 4년 정도면 한 직급 올라갈 수 있고 그래야 물가 상승률 이상의 연봉을 올릴 수가 있다. 다른 회사를 가봐야, 자신의 직급에 맞는 연봉을 받을 뿐 나에게 맞는 연봉을 받는 것이 아니다.


독일이나 뉴질랜드 같은 서양인이 주류인 나라에서 직장인들은 2년 정도 한 회사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았다. 오히려 2년 이상이면 한 회사에 길게 있었던 사람이 된다. 이들에게 직급의 층이 얇아서 점진적으로 직급을 올리며 연봉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예전의 한국처럼 -지금도 그렇지만- 자신의 일하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모두 가지고 거기다 기업프로세스 지식을 얹는 매니징이나 디렉팅 하는 능력을 추가하는 식의 직급상승이 아닌, 매니징 자체가 전문분야이고 거기에 추가로 기술 지식을 추가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술지식으로 일하는 직원이 굳이 매니저로 직급을 올리기 위해 한 회사에 오래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특히 세금이 쎈 유럽나라에서 책임이 2배로 증가하는 승진으로 연봉을 2배로 올려도 올라간 연봉의 50%는 세금으로 나가는데, 정말 리더가 인생의 꿈이 아니라면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마치 부동산처럼 주기적으로 시장(직업시장)에 자신을 포장해서 내놓고 새로이 판매를 하는 기회를 통해 가격(연봉)을 올리는 방식을 취하는 게 더 빠르게 승진하거나 연봉을 올리는 방법이다. 그렇더라도 아무도 이 사람이 어느 회사에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는 그리 중요케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회사에서 일했느냐와 같은 환경이나 명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 사람은 지금 뭘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우리 회사가 지금 당장 필요한 것에 맞는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있냐가 주되 질문이다. 어차피 그 사람을 뽑는 채용인도 지금 회사에 얼마나 오래 있을 가능성이 낮으니 뽑을 사람의 3년 4년 앞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된다.

3년 전 우연히 한국기업에 지원했던 일이 있었다. 면접이라고 하면 '인터뷰' - 서로 마주 보기 -인데, 그들은 3명이었고 큰 회의실 전체가 보이는 카메라 앵글에 얼굴들이 너무 작게 나와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없는 상태로 - 파놉티콘처럼- 인터뷰를 했다. 디자인의 기본인 포트폴리오 요구도 없이 단지 기존의 업무나 성과를 간단히 요약한 발표자료를 준비해 달라고 했다.

프로젝트에 대한 발표나, 매니징 업무에 대한 발표도 없었고 매우 일반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봤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나의 배경과 인터뷰안에서의 말하는 태도나 전문지식정도로 나의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던 것 같다. 아무튼 나는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짧지만 한국기업의 특징을 다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특징이란, 전반적으로 알고 있는 제너럴리스트를 뽑아 회사가 필요한 곳에 마음대로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장 필요한 포지션이 아닌 미래에 가능한 포지션을 광고하고 그 포지션이 생기기 전까지 그 직원을 여러모로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희망고문이라고 한다. 이건 취준생이나 계약직에게만 통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보고 기다릴 줄 아는 우리이기 때문에 생긴 문화이다.


IMF이후로 회사에 '충성' 한다거나 '가족' 같은 직장이란 것은 사라졌다. MZ세대에 들어서 다양한 플랫폼과 콘텐츠 덕분에 한 직장에 목매여 지내지 않아도 되는 동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출근한 지 이틀 만에 사라진 친구도 있고, 마음에 드는 직장이 나올 때까지 무한정 취준생도 있다. 이것은 기업이 구인에 대해 보다 보수적으로 된 것과 관련되어 있는데, 보수적 구인은 새 직원을 가르쳐 써먹을 수 있게 되는 가능성이 낮아진 점과 낮은 기술은 툴로 많이 대체되었기 때문일 수 도 있다. 실제 기업에서의 일자리도 제조시대에서 IT시대가 되면서 줄었고 AI시대가 되면 더욱 줄 것이기 때문이다.


구인에 보수적이게 될 기업들이 회피하고자하는 리스크는 HR플랫폼들이 점차 떠안을 것이고 이제는 첫인상에 좌우 받는 면접을 하지 않아도, 데이터로만 사람을 뽑을 수도 있다. HR플랫폼은 인재를 잘못 뽑을 것에 대한 보험을 들것이고 기업이 HR플랫폼에 완전히 기대지 못하는 이유는 오로지 노동근로법 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그런 플랫폼과 툴들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쉽게 자기 사업을 만들 수 있게 되니 구직자가 아닌 구업자가 되고 있고 구직자들이 회사들 사이를 전전하면서 연봉을 올리는 시대도 곧 저물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회사들 사이를 자주 옮기는 게 줄어드는 게 아니라 더욱 쉽게 되지 않을까 한다. 연봉을 올리기 위해 직장들 사이를 옮기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툴을 사용해서 시간의 효용성과 효율성이 올라가고 회사들은 클라이언트, 그냥 새로운 고객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냥 힘이 개인으로 분산되고 있기 때문이고 이제부터 주어지는 그 힘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연봉을 더 올려야 하나 생각을 가끔 한다. 현재 삶에 만족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으로 됐고 연봉을 올리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냐가 더 중요해졌다. 이제부터는 직장이라는 하나의 거대 플랫폼에만 의지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줄이고 접근성이 좋아진 플랫폼 여러 개를 동시에 활용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늦었다. 따지고 보면 늦은 게 아니다. 모두 각자의 세상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나뿐이고 나에게 그 어떤것의 시작시점도 내가 그것을 시작할 때뿐이니 그게 세상에 가장 빠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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