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오클랜드에서 대중버스를 타면서 흥미로운 장면을 보게 됐다. 버스에 오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밝게 운전기사에게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했다. 내릴 때는 대부분이 "Thank you"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대도시에서조차 이런 인사말이 일상이라는 점이 의외였다. 한국에서는 버스 기사와 대화를 나누거나 인사를 건네는 일이 거의 없으니,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국에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승객과 기사의 대화는 거의 없다. 택시처럼 둘만 타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택시 기사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 간단히 "네" 정도로 응대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회사 차원의 고객 서비스로 인사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승객의 반응은 대체로 제한적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
뉴질랜드의 대중교통 인사는 단순한 친절함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와 사회적 배경 속에서 자리 잡은 문화다. 뉴질랜드는 다른 대륙과 멀리 떨어져 있고, 이민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아 다양한 서비스가 희소했다. 그래서 대중버스나 택시 같은 서비스조차 소중하게 여겨졌다. 이를 제공하는 사람들 역시 독립된 개인으로서 존중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예를 들어, 길고 좁은 국토에 인구가 적은 환경에서 이런 서비스가 수익성 차원에서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협력과 봉사정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민간 서비스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배경에서 "Thank you"라는 인사는 단순히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이 된다. 자신이 받는 서비스가 단순한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거다. 이와 유사한 맥락으로, 미국과 유럽의 팁 문화가 떠오른다. 그곳에서는 식당에서 제공되는 서비스가 식당 자체가 아니라 개별 직원, 예를 들어 웨이터나 바텐더 개인의 서비스로 여겨진다. 고객은 이 개인적 노고에 대해 팁을 통해 감사를 표현한다. 서비스 제공자를 독립된 존재로 존중하는 태도는 뉴질랜드의 대중교통 인사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대중교통 서비스가 개별적 차원이 아니라 공공의 일부분으로 여겨진다. 버스 기사는 특정 승객을 위한 존재가 아니라, 시민 전체를 위한 대중교통 시스템의 일환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승객으로서 자신을 시스템의 일부로 여기고, 그 안에서 인사나 감사를 굳이 표현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가 받는 서비스는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제공된 것이기 때문에, 특정 개인에게 감사할 이유가 적다고 느낀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도덕적 가치가 강한 사회에서는 개인과 공공의 경계가 분명하게 나뉘어 있다. 개인이 도덕적 의무를 수행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당연한 일로 여겨지기에, 그 과정에서 개인적 감사의 표현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자신의 개인적인 의사와 공적인 의사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사람이기도 하다.
뉴질랜드에서 운전기사에게 'Thank you driver!'라고 하는 또 추가적인 다른 가설이 있다.
서양인의 경우, 어떤 상황을 바라볼 때, 그것의 정황, 배경, 원인을 보기 보다, 상황을 일으킨 최종적인 사람을 보는 경향이 있다. 운전기사가 왜 거기에 앉아 운전을 하게 되었는지 그 사회적, 시스템적 원인을 보기보다는 운전이라는 서비스는 그 운전기사가 제공하는 것이라고 보는 경향이 크다.
이는 관계주의적, 맥락적으로 어떤 상황을 바라보는 한국인과는 정반대의 특성으로 개인을 철저히 조직이나 시스템, 정황에서 분리하여 보며, 그 사람의 행동 그 사람개인의 판단과 의지에서 나온 것으로 먼저 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운전기사가 사회적 의무감이나 버스회사의 고객서비스 규정에 따라, 공공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보는 게 아니라, 운전기사 자신이 대중이 아닌 탑승한 개별승객의 승, 하차를 돕고 목적지로 데리고 가기 위해 수고를 하고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에서의 인사와 감사의 표현은 단순한 예의 이상의 의미가 있다. 서비스 제공자를 독립된 존재로 보고, 그들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전하는 문화는 서양인의 인지적 특성과 뉴질랜드의 역사와 사회적 가치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공성과 집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화 위에, 이제는 서로를 시스템의 일부가 아닌 누구의 엄마 아빠, 누구의 딸, 아들인 개인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시각을 좀 더 사용해 봄이 어떨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