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Zhu Mar 04. 2023

상술에 놀아난 팬인가.

다음 공연을 하루 앞둔 오후에서야 송장이 왔다고 한다. 상품이 도착한 게 아니라 ‘그제야’ 출고를 했다는 안내 문자가 말이다. 출근 후 바로 공연장으로 나서야 하는 J는 ‘결국 내일 공연에서도 응원봉을 들지 못하게 되었다’며 낙담했다. 서울에 이어 두 번째 도시까지 J가 손에 쥐지 못한 그 응원봉은 이승윤 전국투어 콘서트 공식 MD다. 경위는 이렇다.


투어를 앞두고 공식 MD를 온라인으로 판매했고 첫 도시인 서울 공연장에서 수령하는 선택지가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응원봉이라 함은 당연히 그 쓸모가 공연에 있으니 공연을 오는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현장 수령’을 선택했을 것이다.


공연까지 두 시간쯤 남았을 때 도착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볼 때 공연장 도착 적정 시간은 사람마다 기준이 아주 같지는 않겠지만 두 시간이면 촉박한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웬걸 MD 수령 줄이 엄청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설마 해서 안내하는 스태프한테 다시 묻기까지 했는데 정말이었다, 현장 판매가 아닌 사전 구매자의 그저 ‘수령’ 줄이었다. 그러니까 예상치 않게 사람이 몰린 경우도 아닌 미리 집계가 된 숫자......인데 그게 가늠이 안되어 이렇다고?


일단 줄을 섰다. 그리고 동행이었던 J와 E의 신분증 사본과 주문내역서를 받아 뒀다. J는 멀리 지방에서 올라오는 중이었고 E는 토요일 교통체증에 묶여 있었다. 줄이 여러 번 돌아 겹쳐 있어 내 앞으로 얼마나 긴지 짐작도 안 돼 초조한데 스태프가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MD 수령은 공연 30분 전에 마감합니다.” 이렇게 줄이 긴데 시간 되면 중간에 끊겠다는 말이었다. ‘장난해?’ 하마터면 소리가 되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가까스로 마감 전에 차례는 왔다. 그런데 공연 전에는 급한 대로 응원봉만 준다고 한다. 나머지 상품은 공연 후 다시 줄을 서라네. 또 대리 수령은 확인도 없이 거절이었다. 한 사람에게 열 개씩 들려주고 대신 나눠줘 달라 해도 될까 말까 싶은데? 손에 들린 건 응원봉 겨우 한 개, 받고서도 기분이 언짢았다. “진짜 장난해?” 기어이 소리가 나왔다. 결국 J와 E는 빈 손으로 공연을 봤다.


공연을 마치고 나왔을 때 당연히 부산했다. MD 수령 줄을 찾느라 우왕좌왕하는 중에 스태프들이 소리치기를 “MD는 차주 월요일에 일괄 배송합니다.” 듣자 하니 귀가가 다급한 관객에 대한 배려였다고 하지만, 어쨌든 공연 전과 말을 바꿈으로 또 혼잡이 일었다.


월요일, 판매처는 SNS에 사과문을 게시했다. 응원봉과 그 외 MD를 구분하여 약속한 날짜에 수령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각각 환불과 신규 MD를 제공한다는 보상안도 함께 올라왔다. J와 E는 다음날 안내 문자를 받았고, 나는 후자의 경우인데 보상품을 받을 주소를 수요일에 제출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금 궁시렁거릴 뿐이었다. 당일 현장 수령 부스를 담당한 직원이 손이 그리도 느릴 줄 몰랐나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주말이 지나자마자 보상안을 공지하며 사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안심했다.


그런데 일괄 배송한다던 날로부터 일주일이 되도록 J의 MD가 도착하지 않았다. 다음 공연은 바로 그 주 토요일이다. 고객센터에 문의를 시도했으나 연결된 챗봇은 ‘문의하신 상품은 순차적으로 출고 진행 중입니다. 다수의 주문 건이 진행되다 보니 소요시간은 상이할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라는 참으로 ‘봇’ 다운 기계적인 답변만 반복했다. ‘야! 너 말고 사람 데려와!’라고 썼어야 했을까. E는 구매를 취소하기로 했다. 그런데 ‘배송 중’ - 다시 말하지만 애당초 배송시킨 적도 없는, 현장에서 받을 상품이었다. -이라는 메시지를 보이며 구매 사이트는 주문 취소에 에러를 띄웠다. 결국 사이트를 뒤지고 뒤져 ‘환불’ FAQ에서 또 그 챗봇과의 대화를 거친 후에야 처리됐다.


처음 말했듯 J는 결국 투어 두 번째 도시 공연 전에 MD를 받지 못했다. 무려 한 달도 더 전에 주문해서 정확히 13일 전에 받았어야 했을 상품이었다. 이런 가운데 해당 도시 공연에서 현장 판매를 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틀쯤 후에는 온라인 재판매도 안내됐다. 그리고 우리 집엔 그 보상품, 신규 MD라는 게 도착했다. 조금도 반갑지 않다. 사건 현장, 첫 서울 공연장, 을 적어도 두 시간 목격하고 이후 J와 E, 그리고 나의 경우까지 지켜본 자로 화가 난다. 보상도 중요하고 투어 도시 현장 판매도 좋다. 다만 일에도 순서라는 게 있는 거 아닌가. 예상치 못한 혼잡으로 현장 수령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면 적어도 그날 안내한 대로 바로 다음 월요일 미수령자들 배송부터 시작했어야 할 일이다. 보상안을 세우고 보상을 위한 신규 MD를 제작하느라 혹 바빴다는 핑계는 댈 수 없다. 가장 먼저는 팔 걷어붙이고 야근을 하더라도 미수령자들 상품부터 챙겼어야 했다.


“제일 화가 나는 건 앞으로 이승윤의 모든 공연장에서 응원봉을 볼 때마다 한 번씩은 지금 이 더러운 기분을 느끼게 될 거라는 것”

이승윤의 음악은 오롯이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기쁨이었고 위로였다는 J가 분을 삭이며 말했다. 응원봉이 뭐라고 팬심을 이용해 장사해 먹는 사람들 상술에 놀아났다며 자책도 했다.


이게 정말 놀아난 팬들 탓일까.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굿즈가 아니었으면, 공연과 무관했다면 대수롭지 않았을까. 아니다. 상품을 구매 후 약속한 날로부터 보름 가까이 받지 못했을 때, 관련하여 '기다리라'라는 자동응답 외에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할 때, 묵묵히 기다린 게 무색하게 그 시점에 다시 구매하면 쉬이 받을 수 있다는 안내가 이어진다면. 허탈하다. 너무나 명백한 소비자에 대한 판매자의 무책임이다. 그 상품이 굿즈여서 다른 점이 있다면 좋아하는 마음을 지키고 싶어 기꺼이 참고 또 참은 것뿐이다. 그래서 놀아난 거라면, 논 사람이 잘못했다.



이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생각한다. 한편 구독자도 별로 없어 괜한 걱정이겠지만 그래도 공개된 곳이니 글의 성격상 염려되는 바도 조금은 있다. 그리고 당연히 난 여전히 이승윤이라는 아티스트와 그의 음악을 애정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너무 속상해서 썼다.

작가의 이전글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