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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Zhu Mar 14. 2023

서울을 버렸다.

버리는 중 알쓸민잡 - 5. 내 구역 밖으로

“서울 출신들만 적응을 못하더라”

대전에서 지낼 때 공공연한 말이었다. 대전은 꽤 살기 좋은 도시다. 엄연히 광역시라 인프라도 웬만큼 갖춰져 있고 비록 한 개 노선이지만 지하철도 있다. 대한민국 지도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사방팔방 이동에 부담도 적다. 그래서 타 지역에서 온 친구들은 정말 만족도가 높았다. 그런데 저 말은 괜한 게 아니라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었다. 정말 서울 출신들만 볼멘소리를 냈다. 서울 톨게이트 지나면 공기도 다르다는 농담을 섞어가며. 적응 못하던 서울 출신 중 하나, 바로 나다. 욕을 좀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근거 없는 서울 예찬이라기보다 이 나라가 워낙 서울에 온갖 것이 집중되어 있기도 하고 그 서울에서 태어나 쭉 살았으니 너무나 익숙한 때문이다.


그 서울을 버렸다. 이사를 하면서 그간 뭘 많이 버렸다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었지만 사실 티도 안 난다. 그런데 이건 표가 난다. ‘서울을 떠나왔다는 것’. 정말 공기가 다르다.


이사를 결심하고서 어디로 어떻게 갈지 고민할 때 서울을 뜬다는 선택지는 처음엔 있지도 않았다. 대전은 통학이 아예 불가능했다지만 불가피하지 않은데 굳이 ‘내 구역 밖’을 염두에 뒀을 리가. 그런데 절묘한 타이밍에 조카가 손을 들었다. 집에서 좀 먼 학교를 다니는 조카는 입학 후 두 해는 코로나로 재택 수업을 했다. 그러다 거리두기가 해제되었는데 학교 오가는 것 만으로 꽤 피곤했던 모양이다. 나에게는 직주근접이, 조카는 근거리 통학이 충족되면서 우리의 ‘서울 밖 동거’가 어쩌다 전격 결정됐다.


없던 동거인이 생긴 게 더 큰 변화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의외로 그렇진 않다. 전보다 상당히 넓은 집으로 왔는데-이것도 진짜 어쩌다-, 그렇다 보니 공간이 거의 안 겹친다. 귀가하면 서로의 생사? 정도만 확인하고 각자의 방으로 간다. 일주일에 많아야 한두 번 식사를 같이 할 때 말고는 정말 각자도생 중. 그 한두 번의 식탁을 위해 요리하고는 담을 쌓은 내가 가끔 메뉴를 고민한다는 점이 고작 변화라면 변화다.


실지 체감되는 변화는 역시 ‘서울이 아니라는 점’. 이사하고 며칠 후 정기진료가 있었다. 광역버스 한 대를 만차의 이유로 코 앞에서 놓쳤고 눈이 내려서 막히기도 평소보다 더했다. 여유를 가진다고 2시간을 잡고 나왔는데 결국 5분 지각을 하고 말았다. 가구를 새로 구입하는데 배송비가 차이가 있었다. 수도권이라도 서울만 벗어나면 3천 원을 추가로 더 물어야 했다. 쇼핑앱에서 장바구니를 열심히 채웠는데 배송지를 새 주소로 고쳐 적었더니 구매불가가 뜬다. 늘 이용하던 앱이었는데...... 그 마트는 손님 하나를 잃었다. 서울에서 멀어진 게 새삼 실감됐다. 서울에서 볼일이 생기면-줄곧 생활권이었으니 대부분의 볼일이 서울이다- 달력을 한참이나 보며 일정을 조율하고, 지인들과 약속을 잡는 건 살짝 부담이 됐다. 생각하기에 따라 모두 사소할 뿐이고 매일 출퇴근하던 거리이니 따지고 보면 아주 멀리도 아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심리적 타격이 크게 왔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비슷할 텐데 왜 이리도 동네는 낯이 설던지,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외딴곳으로 버려져 나 홀로 덩그러니 고립된 느낌이 시시로 들었다. 그럼 그렇지 서울을 버리긴, 버려졌지!


그렇지만 되돌릴 수도 없고 불평해 봐야 좋을 게 없다. 무너진 멘탈을 붙잡고 불편한 점들이 아니라 감사의 이유들이 쌓여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회사가 가까워졌지만 기상시간을 늦추지 않았다. 물론 ‘아침잠 십분 더’는 그 무엇보다 아주 큰 감사가 되고도 남는 줄을 알지만, 본래 일어나던 대로 일어나니 삼십 분 정도 출근이 빨라졌다. 사무실에서 오전이 조금은 더 여유가 생겼다. 당연히 퇴근도 당겨졌다. 매일 별 보며-서울 하늘 어디서 별이 보이겠냐마는- 집에 갔는데, 여기서는 아직 환할 때 들어가는 기분이 쏠쏠하다. 내게도 드디어 저녁이 있는 삶이 허락되나 보다. 하루는 정말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서점에 가서 느긋이 책을 읽었다. 서울의 대형서점보다 규모가 현저히 작지만 눈에 띄는 한 권이 없을 리는 없으니. 영화관도 바로 5분 거리다. 어느 토요일엔 세상 편한 차림으로 조카와 데이트를 했다. 서울이 멀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먼데 버스, 지하철을 운 좋게 제시간에 만나면 한 시간 남짓에 끊는 날도 있었다. 광역 버스 정류장이 바로 코 앞이라 혹 서울에서 볼 일이 늦게 끝나도 막차만 놓치지 않으면 귀가는 보장된다. 낯설다고만 생각한 동네인데 없는 거 빼면 있을 건 다 있고 생각하기 나름으로 서울로부터 아주 멀리 내쳐진 것도 아닌 듯하다. 뭣보다 결정의 이유였던 ‘직장과 학교 가까이’로 덕분에 아껴진 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내자는 다짐을 해 본다. 서울, 까짓것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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