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편 (1)
올봄부터 동유럽 여행에 동행해 줄 친구와 지인들을 물색했다.
"거긴 이미 다녀왔어."
"거긴 안 가."
"바빠서 못 가."
온갖 못 갈 사정들이 그렇게나 많았다.
이거 봐라. 이건 아닌데.
혼자 가긴 싫고.
누굴 옆구리에 꿰차긴 꿰차야 되는데 누가 좋을까.
결국 또 표적이 된 건 딸이다.
"동유럽 갈래?"
아쉬울 땐 역시 딸 밖에 없다.
일단 여행 얘기로 변죽을 울렸다.
딸도 이번에는 시간이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어라!
그렇다면 방법을 바꿔봐야지.
낚싯바늘도 어종에 맞게 꿰어야 하는 법.
큰 떡밥이 필요했다.
"야, 네가 가주기만 한다면 내가 파격으로 쏠게."
어떤 상품을 살까 말까 망설일 때 파격세일을 감행한다면 100% 구매로 이어질게 뻔하다.
서유럽 여러 나라는 가봤지만 동유럽을 못 가본 게 한? 이 되었다.
동유럽 노래를 여러 차례 불렀던 터라 엄마의 소원도 들어줄 겸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지 않은가.
결론은 OK.
결국 모녀의 신발코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패키지 속에 끼어들었고 경유로 결정했다.
직항의 어려움을 알기에 이번에는 두바이를 거치며 허리와 엉덩이에 자유를 허락하기로 했다.
여행지는 체코, 오스트리아, 헝가리 3개국이고 첫 입국지가 체코였다.
인천공항에서 두바이까지의 비행시간은 9시간 30분이다.
그것도 만만치 않은 긴 시간이다.
9시간 30분을 붕 떠있다가 두바이 땅에 발바닥을 안착시킬 수 있었다.
4시간의 자유시간은 두바이 공항 내 면세점을 둘러보고 여기저기 상점들을 기웃거리면서 흘러갔다.
그렇게 크다고 소문난 두바이 공항은 전 세계 여행객들의 임시숙소가 되었다.
한결같이 끌고, 들고, 메고 온 보따리들을 옆에 끼고 긴 의자에 몸을 누인 채 정신없이 잠을 자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목 한쪽에 아예 철퍼덕 누워서 한 여름밤의 꿈을 꾸고 있는 이도 적지 않았다.
국적과 인종과 언어, 문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저 인간으로서 신체적으로 느끼는
공통적인 부분이 같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항은 그런 욕구를 채우고 비우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시 6시간 30분을 비행하여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 닿았다.
오! 쉽지 않다.
체코는 동유럽에서도 바다가 없는 내륙지역에 속한다.
북서쪽으로는 독일.
북동쪽으로는 폴란드.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
남동쪽으로는 슬로바키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체코에 도착해 보니 현지시간으로 오후 1시다.
햇볕은 장작불 옆을 지나가듯 따가웠으나 습도는 없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프라하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는지 길거리는 인파로 넘실거렸다.
체코는 1300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 아직도 현존하고 있다.
전 시내가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 자체다.
건물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높이와 형태와 색깔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들쑥날쑥하지 않고 일정했고 깔끔했다.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건물 벽 두께가 1m라고 한다.
벽이 두꺼운 만큼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도 변함없이 견고하다.
그런 점은 참으로 본받을 만하다.
창문 하나가 깨져도 맘대로 바꿀 수 없고, 건물도 임의로 개조할 수 없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문화재 관리인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도 흔하고 에어컨도 드물다.
벽 두께가 두껍다 보니 밤새 찬 공기를 가둬두고 낮에는 창문을 열지 않는다.
냉기를 가두는 식으로 에어컨이 없어도 실내는 서늘했다.
실로 자연친화적이다.
거리가 깨끗하고 호텔도 화려하진 않아도 아담하고 정갈하다.
창문에 방충망이 없었고 열쇠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돌리고 돌리고 또 돌려야 열어진다.
처음에는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했다.
화장실에서도 아무리 돌려도 열리지 않는 문으로 인해 이거 큰일 났다 싶어 문을 `쾅쾅쾅` 두들기며
살려달라고 소릴 지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가이드가 와서 해결해주지 않았다면 뒤주가 아니라 화장실에 갇히는 신세가 될 뻔했다.
우리나라도 열쇠로 문을 따는 시기가 있었음에도 또 낯설다.
프라하 하면 카를교를 빼놓을 수 없고 카를교 하면 야경을 앞세운다.
카를교는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돌로 만들어진 교각이다.
보헤미아 왕 카를 4세 때 건설되어 카를교라 명명한다.
카를교 위에 인종전시장이 펼쳐졌다.
한국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길거리에서 한국말을 들으면 고향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전 세계 어딜 가든 한국인들이 활보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가 합류하여 프라하 구석구석을 파헤쳐주었다.
프라하의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야경인데 일몰시간이 늦어져 야경을 볼 수 없었다.
밤 9시가 되어도 불빛이 미미하다.
10시가 되어야 제대로 야경을 구경할 수 있다니 숙소로 돌아서던 발걸음에 아쉬움이 매달렸다.
야경을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강변길이 또 북새통이다.
프라하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뉜다.
구시가지는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古都(고도)다.
14세기 카를 4세 때 전성기를 구가하던 힘 있던 도시였다.
신시가지는 프라하 최대 번화가로 우리나라 명동거리에 준할 만큼 번잡하다.
외국인들이 몰리는 핫플레이스 이기도 하다.
이곳에도 이 시기가 바캉스와 맞물린다.
현지인들은 이탈리아나 스페인 아니면 근접 지역으로 바캉스를 떠났다.
`나는 떠났다 올 테니 당신네들 실컷 구경하고 가셔.`라고 자리를 내준 것처럼
온통 외지인들이 안방을 차지하는 형국이다.
신시가지를 대표하는 `바츨라프` 광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벙벙해진 정신으로 돌아다니다간 소매치기의 먹잇감이 된다.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구경이고 뭐고 내 여권과 현금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다.
보따리를 끌어안고 쩔쩔매느라 여행의 유쾌함이 잠시 반감되기도 했다.
(흰 티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사람이 현지 가이드)
바츨라프 광장 바로 옆에 천문시계탑으로 유명한 구 시청사가 있다.
그곳에는 정말 정말 사람들이 서로의 발을 밟을 정도로 빼곡하게 군집했다.
높이 떠 있는 시계에 초점을 맞추느라 정신들이 없었다.
이런 때 소매치기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정신줄 놓으면 집에도 못 간다.
길에서 거지 행세를 하는 사람 중에 다 털려서 집에도 못 가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사람도 있단다.
기가 막히네.
어쩌자고 외국인들의 호주머니를 그토록 무참하게 터는지.
(못된 놈들 같으니라고)
1410년에 설치된 세계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천문시계는 체코 여행객에게 인기 짱으로 자리 잡았다.
600년이 넘는 커다란 천문시계의 크기와 높이와 역사에 압도된다.
이 시계탑에선 매시 정각에 20초 정도 인형쇼가 벌어진다.
정각이 되면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인형이 종을 치고 두 개의 창문에서 12 도사가 등장한다.(시계 위 푸른 창)
돈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지갑을 움켜쥔 유태인, 음악에 취한 터키인, 허영에 빠져 거울을 보는 인형등
여러 유형의 인형이 사람 사는 세상을 풍자한다.
모든 것들은 죽음이라는 명제 앞에서 허무하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20초간의 쇼다.
이 잠깐의 쇼를 보려고 사람들은 서로 밀치고 카메라 초점을 맞추느라 정신들이 혼미하다.
(사람들에 쫓기고 소매치기를 경계하느라 밀려다니면서 찍은 측면사진)
그래, 삶은 그렇게 짧은 쇼다.
천문시계는 후다닥 지나가는 인생길에서 생을 대하는 자세가 어때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인형들이 지나간 찰나의 순간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그곳을 돌다가 선택관광으로 엔틱카를 타보는 재미도 누렸다.
시내를 돌아 언덕으로 올라가니 언덕 아래로 펼쳐진 동네가 포근한 서양화를 그리고 있었다.
언덕 아래로 펼쳐진 동네 풍경.
이튿날 성 비투스 대성당 내부를 관람했는데 대성당은 그야말로 체코의 역사가 묻혀있는 현장이다.
1526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면서 애초의 고딕 양식이었던 성당이
르네상스로 바뀌었다.
르네상스 양식은 바로크 시대에 다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후스 전쟁의 여파로 파손된 성을 복원하기까지 무려 천년의 세월이 뭉친
인고의 결정체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성당이기도 하다.
이 성당은 보헤미아 군주들의 대관식이 열리기도 한 장소이며,
성당 지하에는 카를 4세와 바츨라프 4세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성당은 체코인들이 살아온 발자취가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옛 마을의 형태도 성당 안에 부조로 정리되어 있다.
성당은 단순히 가톨릭 신앙의 성지가 아니라 `인생이 뭐라니?` 를 함의하고 있었다.
대성당 측면. 선택관광으로 1인당 60유로.
예배를 보던 성당 내부.
성당이라면 으레 등장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알폰소 무하의 유명세가 얹혀있다.
높은 벽 틈에서 쏟아지는 오묘한 빛은 웅장함과 엄숙함으로 성당을 받쳐주고 있다.
종교가 없어도 그곳에선 왠지 자꾸만 마음을 추스르게 된다.
이곳저곳 발길 닿는 곳마다 감탄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대성당을 기점으로 또 한 번의 폭소가 흘렀다.
왜?
일행 중에 어떤 모녀가 이곳을 오기까지의 고단한 과정을 토해냈다.
그녀도 여기저기 갈 사람을 물색한 결과 동행할 사람이 마땅찮아 딸을 지목했단다.
딸은 자꾸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가 파격적인 떡밥을 던진 거다.
엄마를 동행해 주면 여행비는 물론 거기다 백만 원을 보너스로 얹어주겠다.
그래도 안 갈 테냐.
이런 상황에서 안 갈 수 없지.
경비만 해도 얼만데.
거기다 보너스까지 얹어주면 이건 완전 꿀이지.
그리하야 모녀는 기필코 체코 땅을 밟았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조금 억울하다.
성당에 들어서니 고해성사를 해야 할 판국이다.
딸의 옆구리를 찔렀겠다.
내 상황은 보너스까진 아니었지만 가자고 졸라댄건 맞다.
그 대신 딸이 지극한 보좌진이 되어 왼팔도 끼고 오른팔도 끼고,
가방도 들고 헐거워진 인지력까지 챙겨주었다.
이렇게 든든한 동행자가 어디 있을까.
남편도 이렇게 바스락거리고 챙겨주진 못한다.
낯선 땅 체코의 날들은 즐거움과 고단함을 동시에 이끌고 흘러갔다.
종일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들어서면 세상과는 무관했다.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은 모두가 고개가 덜렁덜렁 제멋대로 흔들렸다.
우리가 묵던 숙소 전경. 흰 버스가 우리를 이동시켜 준 주인공.
체코는 중부 유럽으로 총인구가 450만 정도로 기온은 3개월만 온화하고 9개월은 동절기다.
요즘은 낮동안은 30도가 넘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서 기온에 맞추느라 겉옷을 주렁주렁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요상한 모습을 연출했다.
매사가 빨리빨리를 지향하는 우리와 달리 이곳 사람들은 느긋하고 급할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완만하다.
숙소 앞 화단. 노란 집 뒤로 초지가 있고 그곳에서 소들을 방목함.
숙소 앞길, 개인 주택.
`변신`을 쓴 `카프카`의 골목길 상가에서 이 선물을 사는데도 어찌나 느리던지.
한국인들 속 터지고 울화통 터진다.
travel 이란 단어는 본래 고생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아무리 옷을 새로 갈아입었어도 꼬질꼬질한 행색과 시커메진 얼굴은 유랑민의 본보기다.
그래도 길 위에선 웃음이 만발한다.
여행의 속성은 본래 그렇다.
독자님들! 염려덕에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여행기는 체코 편 1~2와 오스트리아 편 1~2로 나누어 연재하겠습니다.
헝가리 그곳은 또 어떤지 함께 보세요.
많이들 다녀오신 동유럽이지만 나름 다른 점도 있는 여행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