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미 선 May 29. 2024

인생 그게 뭐라니?

목구멍은 포도청

1854년 영국 런던은 시대적 상황이 어땠을까.

당시 런던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군림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수도였다. 

그곳은 48km 반경 내에서 무려 250만 명 이상이 바글거릴 정도로 복잡했다.


산업화의 발상지가 된 영국은 극소수의 부자들과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이 혼재했다.

아이들도 생계를 위해 넝마주이와 강물수색꾼으로 나서야 했고 돈이 될만한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인구밀도가 높고 거기에 맞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시대였다.

한마디로 열악했고 열악하다는 것은 청결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오늘은 芬(향기 분) 아닌 糞( 똥 분)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겠다. 


변, 그건 살아있는 생물은 날마다 경험해야 하고 매일 치러야 할 신진대사의 한 부분이다.

입구가 있으면 반드시 출구가 있다.

먹었으면 배설이라는 공식은 언제나 정답이다. 


병원에 가도 변은 잘 봤는지부터 물어본다. 

생체리듬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지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서다.  

아무리 고상한 척을 해봐도 소용없다.

이것은 가장 원초적 삶의 출발점이자 죽음으로 종점을 찍는 생체시계다.


이런 관점으로 볼 때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똑같다.

미국이라고 다르고 영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신체활동에 있어선 무엇보다 그렇다.


19세기 런던은 하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밀집된 인구에 비해 배설물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먹고 싸놓은 오물들이 길바닥과 하천으로 넘쳐났다.


많으면 많을수록 악취는 기승을 부리는 법이다.

이 골치 아픈 문제가 어떤 이들에겐 생계수단으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배설물이나 폐품을 처리하는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어려움이 생기면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직업이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다.

그런 이유로 청소부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하수관 수색꾼, 개펄수색꾼  등의 최하위 직업군이 나타났다. 

한 술 더 떠서 뼈수거인, 개똥수거인, 분뇨수거인 이라는 극한 직업도 생겨났다.

최하위 계급은 날로 달로 늘어나 거의 10만 명에 육박했다. 

그들만 모아도 영국에선 다섯 번째로 큰 도시를 만들 지경이었다.

먹고살기 힘든 시대는 하층민의 수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철저하게 분업화, 세분화되었다.

그중에서도 두드러진 직업은 분뇨수거인을 들 수 있다. 

그들은 건초로 퇴비를 만들거나 분뇨를 직접 그 위에 뿌려서 거름을 만드는 농사꾼들에게 

반가운 거래처였다.

반가운 거래처는 중세시대 유럽 전역을 칙칙폭폭 발전시키는 근원이 되었다.


19세기 무렵의 분뇨수거인 들은 그들만의 세밀한 작업지침이 있었다.

낮에는 작업을 하지 않았고 자정에서 새벽 다섯 시까지가 그들이 일하는 시간이었다.

밧줄을 담당하는 1명.

구멍을 담당하는 1명.

통을  담당하는  2명. 

4명이 1조로 엮어진 이들은  늘 같이 붙어 다니며 작업을 실시했다. 


나름 체계적이고 능률적인 작업이었다.  

3D 업종은 예나 지금이나 기피하는 이가 많고 그렇다 보니 임금 수준이 높았다. 

분뇨수거인 들도 지저분 한 만큼 대가는 묵직했다.


구덩이 하나당 1실링이었다.

직업이 다른 일반 숙련공의 2배가 넘었다.

그 당시 1실링으로 무엇을 살 수 있었을까.

돼지고기 900g. 소고기 800g,  버터 400g,  감자 8.1kg, 밀가루 5kg을 살 수 있었다.


그들은 새벽이 될 때까지 등불을 들고 1실링을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주인집에서 돈을 받고 또 농군에게 거름으로 팔고 이래저래 돈이 되는 작업이었다.

20일만 일을 해도 개인 당 20실링은 훨씬 넘었다.

20실링은 1파운드로 어마어마한 양의 밀가루를 살 수 있는 돈이다. 

윗글에서 1실링에 대한 가치를 언급했으니 한 번 셈을 해보자.


안 먹어도 배가 부를 만큼 부자가 된 느낌일 것이다.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는 왜 그렇게 보이는 것마다 먹고 싶은 것인지.

왜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 것인지.

지저분함을 발로 뻥 차버리고 그곳에 포만감을 얹어놓은 돈이야 말로 위력이다.

돈은 그렇게 가혹하고 냉정하다. 


그 일은 제대로 정화조가 갖춰지기 전까지 일이 끊어질 수 없는 직업이었다.

먹고 싸는 일은 중단되려야 중단될 수 없다.

그러므로 최하위 직업이었지만 고소득 직종이었다.


그들은  작업을 끝내고 주인집에서 건네주는 진 한 병을 나눠마셨다.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무슨 수로 그 고되고 힘든 중노동을 견딜 수 있었을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은 이들의 직업과 상통했다. 

지독히도  더럽고  냄새나는 糞을 치우면서 憤(분할 분)을 삭일 수 있었으니. 


그랬어도 그들은 경제적 바탕 위에선 주류였다.

독립적인 도급자였으며  도시의 농부들에게 그것을  팔아서 소득은 물론  

냄새나는 도시를 정화시키는 선량한 시민이었다. 


비록 `갈퀴꾼`이란 천박한 호칭이 따라붙었지만 동시에 칭찬받는 직업이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들을 그들이 해결해 주었다.

등이 가려워 피가 나도록 긁고 싶을 때 그들은 갈퀴를 가져와 득득 시원하게 긁어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공동체의 필수 기능을 수행한 그들이 있어 도시는 날로 달로 정화되어 갔다.

나날이 사람다움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도 그와 다르지 않았다.

糞(분)을 수거하는 사람들이 골목으로 돌아다니며 소릴 질렀다.

차야할 곳간은 비어 가고 변소만 넘쳐났다.


그들은 양쪽에 나무로 만든 똥통을 지게에 매달고 뒤뚱거리며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에는 질금질금 흘린 오물들로  여름에는 파리떼가 극성을 부렸다. 

사람들이 전부 피해 다녔지만 그건 돈으로 연결되었다.


그 일은 생활을 받쳐주는 생명줄이었고,

아이들의 학업을 중단 없이 이어갈 수 있는 자금줄이었고,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부자가 되겠다는 희망줄이었다. 


농부들에게는  풍년을  기약하는 중요한 거름이었으며,

말라가던 농작물에겐 영양가 풍성한 밥이었다.  

인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순환의 원리요, 재할용 대안이었다.


이토록 입과 연결된 파이프는 언제나 고달프고 무거웠다.

하층민들이 생을 엮어가던 과정은 오물보다 더 처절하게 후각 위에 군림했다.

사람들은 그때 깨달았다.


이것은 내 생애에서 마감하자.

내 후대에는 이런 고난을 물려주지 말자.

이를 깨물고 그들은 자식들을 먹이고 교육시켰다. 

糞( 똥 분)을  芬(향기 분)으로 바꾸고자 고군분투했다.


사람 마음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같다.

찬밥 보다 갓 지어낸 따끈따끈한 밥을 먹고 싶고 악취보다 향기를 맡고 싶다.

낡은 옷보다 새 옷을 입고 싶고, 고무신보다 가죽구두를 신고 싶다. 

이것이 대개 공통된 마음들이다. 

사람이기에 더 나은 환경을 바라고, 생각하는 인간이기에 자신을 올려놓고 싶다. 


그러나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 만만한 콩떡이 될 수 있냐 말이다.

콩떡커녕 방금 화덕에서 튀어나온 고구마가 내 손에 확 던져질 때가 허다하다.

욕망은 저기 저 높디높은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어놨건만,

몸은 진창을  헤집고 있을 때가 어디 한 두 번이랴.


어쩔 수 없이 똥지게든 오줌통이든 걸머지고 휘적휘적 인생길을 걸어갔다.

그 인고의 세월들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었고 오늘의 눈부신 성장을 견인했다.

서양이든 동양이든 인생은 그렇게 진창 속에서 탄생했고 각성 속에서 익어갔다.


고대 로마나 그리스 하층민들은 또 어땠을까. 

그때의 변기는 딱딱한 돌이나 나무였다.

이 차가움을 면하기 위해  하녀나 하인이 먼저 앉았다가 주인에게 앉히는 행위를 되풀이했다. 

그들도 사람 속에서 사람 아래로 살아야 했다.


생명을 연장시키고 발전을 모색하던 근간은 이리도 험난하게 오늘까지 이어졌다.

인생 그게 뭐라니?

지난 모든 날들은 남루해도,  비루해도, 억울해도 모두 실존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연결해 가는 것. 

생은 그렇게 여기까지 닿았다.

그렇게 또 그렇게.


스티븐 존슨. 『감염도시』 (김영사) 참고.



인생 그게 뭐라니?

인생이란 단어를 가지고 이리저리 변주를 시작한 지 벌써 6회째.

인생이란 단어 속에  제  개인의 인생사는 물론 다양한 소재를 다룰 예정입니다. 

우리네 살아가는 모든 것들이 다 인생이니까요.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생 그게 뭐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