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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Jan 26. 2022

죽으려는 건 아니지만, 죽을 준비는 해두려고요

- 어느 장례식장을 다녀오면서

말을 꺼내기 전에 우선, 

죽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는다. 

나이가 들어서 죽는 게 당연하다고, 그게 다행이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바라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얘기하는 게 꺼려질 뿐. 죽을 준비는 언제 해도 어색하지 않다. 




얼마 전 시댁 친척분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검은 옷차림으로 장례식장에 가서 조의를 하고, 상주와 맞절을 하고, 머릿고기와 육개장을 먹는다. 정해진 순서와 의식들. 고인이 오랜 투병을 겪어와선지 장례식장 분위기는 어둡지 않았다. 자식들의 눈가도 이미 말라있었다. 오랜만에 친척들이 하나 둘 모이니 그저 명절 같은 분위기.


아이가 몇 살이냐, 잘 크냐. 잘 큰다. 지금 누가 보고 있냐. 할머니에게 맡겼다. 회사는 잘 다니냐. 휴직했다. 남편이 속 썩이진 않냐. (썩인다. 하지만 말하진 않겠다. 여긴 시댁 식구들, 하하)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하고 장례식장을 나왔다.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생각해보니 고인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생전에 긴밀한 친분은 없었기에 슬프진 않았지만, 애도의 마음은 있었다. 근데 내가 애도를 제대로 한건가, 싶었다. 이런저런 근황토크만 하다 온 것 같은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장례식장에 걸린 고인의 액자와 눈이 마주치면, 뭔가 멎쩍었다. 아직 구천을 떠돌고 있다면, 그분은 어떤 심정일까. 친척들의 대화를 지켜보면서 마냥 흐뭇한 기분일까, 아니면 이야기에 끼어들고 싶어서 애가 타는 심정일까.


뭔가 찜찜했다. 언젠가 내 장례식도 이렇게 치러지는 걸까 싶어서. 결혼식은 몇 개월에 걸쳐 공을 들여 준비하는데, 장례식을 내 손으로 준비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명색이 내가 주인공이 되는 의식인데, 내가 원하는대로 치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유언을 남기기로 했다.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부탁, 장례식과 그 이후에 대한 부탁.


                                                  



첫째, 장례식을 누가 준비할지 모르나, 생전에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남편이 있다면 네가 해라. 함께 살든 떨어져 살든 토 달지 말고 해라. 남편이 없다면 내 딸 연우가 해주었으면 한다. 여자라고 상주 못할 거 없으니, 쫄지 말고 하거라. 유교주의든 뭐든 고인이 우선이다. 유언에 있다고 우기면서 제일 앞에서 장례식을 진두지휘하거라.


둘째, 오늘 내가 숨을 거두었다면 일단 너는 숨을 쉬어라. 놀라지 말고, 뭐부터 준비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앉아서 물 한잔 마시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준비가 될 때까지 일단 쉬어라. 굳이 빨리 하려고 하지 마라. 하루는 주위 사람들에게 부의를 돌려라. 친가분들께는 일일이 전화를 드리고, 자초지종을 설명드려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죽음이 점점 실감이 날 거다. 


셋째, 장소는 장례식장은 피했으면 한다. 천주교인이니 성당을 대관해다오. 성당에 자주 빠졌다고 신부님이 뭐라 하거든 통장을 털어서 성금을 많이 하거라. 


넷째, 죽은 다음 날 하루만 장례식을 해다오. 친지, 친구들을 초대하고, 헌화와 묵념으로 대신해다오. 조문객들이 방문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주었으면 좋겠다. 플레이리스트는 flo 보관함에 저장되어 있단다. 생전에 좋아했던 가수, '카더가든'과 '성시경'을 초대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다섯째, 셋째 날은 가족들만 있었으면 좋겠다. 이름만 알고 지내던 지인 열 명이 방문하는 것보다 가족들의 열 마디가 더 소중하단다. 돌아가면서 내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씩 해다오. 욕을 해도 좋고, 서운한 걸 말해도 좋고, 슬프다고 울부짖어도 다 들어줄게. 상담사로 지낸 세월이 있으니 잘 듣는단다. 


여섯째,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울지 말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서 울어라. 장례식을 치를 때는 정신이 없어 잘 모를 수 있다. 일상으로 돌아간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수도 있다. 혼자 흐느끼지 말고, 지나가던 나그네라도 붙잡고 펑펑 울어라. 


일곱째, 수목장으로 치러주었으면 한다. 햇볕이 잘 드는 나무였으면 좋겠고, 1인당 300만 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골라라. 자연으로 돌아가는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땅으로 스며들어 편하게 있을 테니, 네가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언제든지 나와 연결되어 있는 거란다. 


여덟째, 장례식을 다녀간 분들께는 일일이 편지나 문자를 보내거라. 남들의 시간에 보답하는 게 도리다.

아홉째, 조의금은 장례를 총괄했던 사람이 가져라. 남편 혹은 딸이 되겠지. 혹시 친척 중에 누군가 조의금을 탐내거든(내가 진 빚이 있을지도...), 얘기를 들어보고 합당하면 그냥 주어라. 죽을 때는 다 놓고 가니 돈에 연연하지 말아라.

열 번째, 사랑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가 세상에 없는 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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