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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계현 Mar 08. 2023

상담 내용은 정말 비밀이 보장되나요?

"선생님, 상담에서 말한 게 정말 비밀이 보장되나요?"


상담사는 '비밀보장의 의무'가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상담사는 아닙니다. 상담사가 지닌 자격을 부여한 기관에서 정한 윤리규정이기에, 해당 기관에 소속된 상담사에게만 의무 규정이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서, (사)한국상담심리학회 윤리규정은 해당 학회에서 발급하는 자격을 지닌 상담사에게만 지켜야 할 의무가 생기는 거죠. 


하지만 꼭 윤리규정이 없더라도, 기관 규정이 없더라도, 상담사는 기본적으로 내담자가 상담 중에 말한 내용이 다른 곳에 전달되지 않도록 애를 씁니다. 비밀이 새어나가면 상담 관계가 틀어지니까요. 상담 관계가 틀어지면, 그 상담은 안 하니만 못한 게 됩니다. 용기를 내어 상담을 시작한 내담자에게 상처를 주니까요.


저는 10년 넘게 공공기관에서 일했습니다. 청소년상담복지센터, 대학, 구청, 소방재난본부, 교육청. 대부분 무료 상담기관이죠. 내담자가 상담비용을 내지 않는다는 말은 어딘가의 지원이 있다는 것이고, 그 상담비용을 지원한 곳은 그에 합당한 '관리'를 원합니다. 대개 특정한 목적 하에 상담 비용을 지원하니까요.


가령, 대학은 학생들이 대학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생상담센터를 두어 심리검사, 심리상담, 집단프로그램을 지원합니다. 학교 안에 상담센터가 있으니 학생들은 편하게 상담을 신청하죠. 그런데 학생들이 상담한 내용은 과연 어디까지 비밀이 보장될까요? 


예전에 대학에서 근무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다른 학교로 편입하는 사례가 늘자, 중도탈락자를 방지하겠다는 명목으로, 학생상담센터에서 상담한 내용을 전산에 입력해서 해당학과의 지도교수와 공유하라고 하더군요. 상담 비밀보장의 중요성에 대해 입이 닳도록 얘기했지만, 반영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국대학상담센터협의회라는 곳이 있다고 해서, 윤리위원회에 연락을 취했습니다. 학교에 공문이라도 보내주었으면 했어요. '상담내용을 지도교수와 공유하는 건 윤리규정에 어긋난다'는 내용을 담아서요. 윤리위원회 간사인 모대학 교수님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로 조치는 없었습니다. 


저 역시 대학이라는 기관에 소속된 상담자이기에, 기관의 요구를 따르지 않을 수는 없었죠. 그렇다면 상담내용을 최소화해서 올리고, 상담할 때 학생에게 '지금 말한 내용이 상담일지에 기록되는데, 그걸 지도교수가 열람하게 된다'는 내용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양심에 따라 내린 결정이었지만, 상담이 잘 되지 않았죠. 몇몇 친구들은 "선생님, 근데 이 내용은 쓰지 마세요."하고 수시로 얘기를 꺼내기도 했고요. 그게 참, 안타까웠습니다.




요즘은 기업, 대형병원, 관공서 등에서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 업체와 협약을 맺어서, 소속 직원들에게 복지 차원에서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EAP란 근로자복지지원프로그램입니다. 조직 생산성 향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에 대해 상담, 코칭, 서비스 연계 등을 하는 프로그램이죠. 


상담을 신청한 내담자, 즉 직원은 상담비용을 일부 지원받거나, 전부를 지원받습니다. 그럼 해당 상담비용은 기관이 지불할 테고, 지불한 사람은 목적이 있겠죠. 생산성 향상, 조직 관리 등등.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담 실적과 생산성 향상에 대한 통계자료가 필요합니다. 이 경우에도 '관리'를 위해서 상담 내용의 일부를 보고하기를 요구합니다. 


회사에서 지원을 받아 협약된 기관에서 상담을 받는다면, 상담하기 전에 반드시 물어봐야 합니다. 

"선생님, 상담 기록이 어디까지 보고되나요? 어떤 내용까지 공유되나요? 상담 기록은 얼마 동안 보관하죠?" 


보통은 상담 전에 '상담동의서'를 한 장 주면서 서명을 하라고 할 겁니다. 거기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한 내용, 상담내용이 교육, 슈퍼비전, 통계 등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을 거예요. 대부분 동의서를 내밀면, 제대로 읽지도 않고 자동으로 '동의' 체크를 하고 서명을 합니다. 기관에서 지원하는 거니까 그냥 믿는 거죠. 


그런데 자세히 물어보셔야 합니다. 외부 상담센터는 EAP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고, EAP업체는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죠. EAP업체에서 상담센터로 비용을 지급할 때는 근거자료가 필요할 테고, 상담일지를 요구할 겁니다. 상담센터는 EAP업체로 상담일지를 보내겠죠. 또 회사는 EAP업체에게 돈을 지불하니, 상담일지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상담에서 말한 내용이 어디까지 보고되고, 어떤 내용까지 전달되고, 기록이 언제까지 보관되는지, 자세하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제일 안전한 곳은 개인상담센터입니다. 돈을 내가 지불하니까, 나한테 온전한 목적이 있거든요. 개인상담센터는 상담내용을 다른 곳에 보고할 의무도 없고요. 이런 경우에는 해당 상담기록을 어떻게 보관하는지, 언제까지 보관하는지 등만 문의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물어보는 경우는 잘 없어요. 호소문제를 이야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고, 자세하게 물어보는 걸 실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분도 있고,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예전에 상담받은 상담선생님은 주기적으로 상담사례집을 발간하셨는데, 전 상담사례집이 나올 때마다 꼼꼼히 살폈어요. 혹시라도 내 얘기를 쓰지 않았을까 하고요. 상담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다른 곳에 퍼뜨리는 건 아닐까, 전전긍긍했죠. 처음 상담할 때는 뭐가 뭔지도 모를 때라, 상담선생님에게 상담기록이 어떻게 보관되는지, 이런 질문을 할 생각도 못했어요. 그러면서 의심했던 것 같아요. 상담자가 어디에 가서 내 얘기를 하고 다니지 않을까 마음 졸이면서요.


상담은 굉장히 내밀하고 오묘한 작업이에요. 상담에서 드러나는 내 모습은 '만화경' 속 모습 같아요. 수치스러운 것도 있고, 비굴한 것, 사악한 것, 추레한 것, 그나마 괜찮은 것도 있고, 오만가지가 얽혀있죠. 상담내용이 누군가에게 공유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발가벗겨진 느낌일 것 같아요.


상담자는 상담에 대한 대가를 받아요. 그 비용을 기관에서 지원받거나, 나라 세금으로 충당된다면, 비용을 지불한 곳의 '목적'이 있다는 사실, 그래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관리' 차원에서 상담 기록이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 그 부분을 염두하셨으면 해요. 상담동의서를 대충 읽고 기계적으로 서명하지 말고, 이해가 될때까지 꼼꼼히 물어보세요. 상담 기록이 어떤 내용까지 보고되는지, 상담기록은 어떻게 보관되는지, 비밀이 정말 유지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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